“하아, 두우, 헷, 넷…아헛, 여얼.”
지난 29일 서울 마포구 애오개역 인근 제이에스오페라단 연습실에서 청년 9명이 다소 뭉개진 발음으로 숫자를 하나부터 열까지 셌다. 악어처럼 턱을 위아래로 벌린 채 소리를 내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발성법을 가르치는 이재성 강사(58·사진 오른쪽)는 “입을 제대로 안 벌리면 성대가 상할 수 있어요!”라고 외치며 이들을 독려했다.
평범한 노래 수업 같아 보이지만 참가한 20~30대 청년 9명은 모두 같은 아픔을 공유한 사이다. 이들은 오랜 시간 방에서 나오지 않고 은둔·고립생활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날 열린 ‘8주의 기적, 한국형 발성법’ 수업은 서울시가 사단법인 씨즈와 손잡고 ‘청년의 자립을 위한 작은 학교’라는 콘셉트로 진행 중인 은둔·고립 청년 지원사업 ‘두두학당’의 일환이다. 이 학당에선 서각·오카리나·공예·보드게임 등 동아리 모임 11개를 열고 있다. 이 중 9개는 은평구 평생학습관에서 청년과 노인들이 어울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김모씨(26)는 “누구나 노래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 않냐”며 용기를 낸 배경을 설명했다. 참여 청년들은 8주간 매주 한 번 모여 2시간씩 호흡법을 배우고 노래를 연습한다. 마지막 주에는 가족과 지인들 앞에서 공연도 할 계획이다.
참가자들의 목표는 저마다 다르다. 희귀병(크론병)을 앓아 고등학교 졸업 후 10년 넘게 은둔생활을 했다는 박씨는 평소 내보지 못한 높은 음을 내보고 싶다고 했다. “가족과도 관계를 맺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는 이모씨(25)는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서서 노래를 해보는 게 목표라고 했다. 반장 최모씨(29)는 “위축돼 있던 사람들이 이곳에서만큼은 눈치 안 보고 큰 소리를 지를 수 있어서 다들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쿠사 미노루 씨즈 고립청년지원팀장은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들은 사회에 적응을 못 한 게 아니라 사람을 능력으로 판단하고 비하하며 배제하는 주변의 시선과 기대에 지나치게 적응(과적응)한 것이 문제인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하는 곳도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2019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지난 4월엔 서울시가 은둔고립 청년 지원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오쿠사 팀장은 “청년들을 품어주고 다시 출발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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