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다수당이 쌀농사를 짓는 농민에게만 특혜를 주는 ‘양곡법 개정’, 간호 인력을 갈라치기하는 ‘간호법 제정’, 내년 총선을 위해 노조를 확실히 잡아두겠다는 ‘노란봉투법 입법’을 마구잡이로 밀어붙여도 국회에서 재논의하거나 견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국정 운영 부담에도 대통령의 법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국회의 ‘마구잡이 입법’을 막는 유일한 대안으로 꼽히는 이유다.
의회 내 다수에 의한 마구잡이 입법 견제는 원칙적으로 양원제가 답이다. 국회에서 만든 법이므로 국회 내에서 법안 재의가 이뤄지는 것이 맞다. 국회를 견제해야 할 시민단체 정당 학계는 비례대표 확대에 매몰돼 있고, 언론은 계속 터지는 정치 기사에 전념하느라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 메커니즘의 중요성을 보지 못하고 있다. 양원제로 한 원의 입법 폭주를 다른 원이 견제하는 것이 순리임에도 다수의 입법 폭주에 대한 제도적 개선 논의가 전무하다.
아마도 국민 다수가 ‘상원을 만들어 입법 논의가 중복되고 의원 정수가 늘어나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자유와 기업 경영활동을 규제하는 법안 논의는 ‘신속’이 아니라 ‘숙고’가 핵심이다. 법안 내용은 양원에서 모두 심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의원 증가 우려는 현행 비례대표 의원 47명을 상원으로 재구성하면 사라진다. 여성, 청년, 탈북자 출신 비례대표 의원이 있어야만 소수 집단의 이익 대변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군색하다.
게다가 비례대표의 역할과 존재 이유는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비례대표 의원은 누구를 대표하는지 대표성이 불분명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명확하지 않다. 현실적으로 비례대표 의원은 국민이 아니라 자신을 의원으로 뽑아준 정당 실력자에게 충성하기 때문에 “더 이상 정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평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즘 더불어민주당 비례의원 일부가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에 공천받을 목적으로 당 대표 호위 발언을 이어가는 모습은 처량하기까지 하다.
따라서 비례대표 의원을 전환해 양원제 상원으로 순수하게 지역 대표를 선발해도 좋을 듯하다. 일부에서는 비례대표 제도가 사표(死票) 방지라는 목적이 있다고 강변하지만 당락 결정에 사용된 투표를 사표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양원제는 우리 헌법에서 결코 낯설지 않다. 제1차 헌법개정에서 정부 제안의 대통령 직선제와 양원제(제31조 국회는 민의원과 참의원으로써 구성한다), 야당 제안의 국무총리 국회 인준과 국무위원 불신임 제도를 발췌·개헌했다. 양원제는 이미 1952년에 도입된 것이다. 단지 이승만 정부가 참의원을 구성하지 않아 양원이 성립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어 1954년 2차 헌법개정(사사오입 개헌)에서도 양원제를 존치시켰다. 제2공화국을 탄생시킨 3차 개헌에서는 민의원 233명, 참의원 58명으로 양원제를 운영했다. 하지만 군부의 5·16 정치 개입으로 제3공화국 헌법이 제정됐을 때 행정 효율성과 신속성을 이유로 양원제는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원제가 이어져 왔다.
인구 감소 시대에 지역 소멸과 지역균형 발전 문제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지역 대표들의 모임인 상원 도입은 시급하다. 지방분권 확대나 연방제 수준의 지역 자치 미래를 고려한다면 지역 대표 상원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 강원도와 제주도처럼 면적은 넓지만 인구가 적어 발생하는 ‘인구 대표와 지역 대표의 불균형 문제’를 상원 도입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입법부 견제가 최소화돼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국회 내 법안 재의 장치는 꼭 필요하다. 특히 정당의 선거 공학적 고려나 특정 이익집단에 대한 고려 때문에 다수파 정당이 밀어붙이는 법안에 대해 국회 내 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비례대표 제도 폐지와 양원제 도입은 헌법개정 사항이다. 국민 동의가 필수다. 지금이라도 양원제 도입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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