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인텔 퀄컴을 비롯한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기업의 올 1분기 재고자산이 3년여 만에 감소했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중앙처리장치(CPU) 등의 수요가 몰리면서 재고 물량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시장에서 GPU·CPU와 함께 서버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까지 폭증할 전망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터널을 탈출하는 시점이 더 빨라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엔비디아 재고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장이 급팽창하는 것과 맞물린다. AI 서비스를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엔비디아가 만든 GPU와 함께 HBM을 비롯한 고성능·고용량 D램을 서버에 대거 장착해야 해서다. 엔비디아는 세계 GPU 물량의 60~70%를 공급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재고 감소 흐름은 지속될 전망이다. AI 열풍이 불면서 정보기술(IT) 업체들의 GPU 확보전이 사재기 양상으로 번지고 있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현지시간) “GPU 구하기가 코로나19 대유행 초기 때 화장지를 구하는 것만큼 어렵다”고 전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GPU가 마약보다 구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AI서버 출하량은 올해 118만3000대로 지난해 대비 38.4%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AI 반도체 수요는 46% 불어날 전망이다.
엔비디아 주가는 뉴욕증시에서 30일 장 초반 5% 넘게 상승해 시가총액이 1조달러(약 1323조원)를 넘어섰다. 세계 반도체 기업 가운데 시총 1조달러를 돌파한 건 엔비디아가 처음이다.
GPU는 물론 CPU와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수급 여건도 팍팍해지고 있다. CPU 업체인 인텔과 AP를 제조하는 퀄컴의 1분기 말 재고자산은 각각 129억9300만달러, 6858만달러로 지난해 말보다 각각 1.7%, 1.1% 줄었다. 두 회사의 재고자산이 감소한 것은 분기 기준으로 2020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이들 업체가 GPU·CPU·AP 등의 재고를 확충하기 위한 주문을 늘릴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는 엔비디아 등에 판매할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늘어날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인텔과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엔비디아에 HBM 공급을 늘릴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달 10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만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의 경우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실적 향상에 대한 기대도 높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의 주요 GPU는 TSMC 파운드리를 통해 생산하고 있다”며 “하지만 첨단 GPU를 계속 설계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생산을 맡길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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