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30일 확정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안을 놓고 의료계와 플랫폼업계, 시민단체 등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범사업 도중에도 진통이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산업계에선 의료계 눈치를 보느라 정부가 헬스케어 산업의 혁신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한밤중 소아환자에게 약 처방 안 돼
다음달 1일 시행되는 시범사업에서 비대면 진료는 원칙적으로 동네 의원급 의료기관의 재진 환자로 제한한다. 논란이 커지는 것은 18세 미만 소아청소년 환자다. 정부는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소아청소년 환자도 재진을 원칙으로 하되 야간과 휴일에는 초진 상담을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의학적 조언’만 들을 수 있다. 열이 나는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라거나 응급실을 찾으라는 등의 조치만 알려준다. 집안에 약이 없어도 처방은 받을 수 없다.이에 대해 의료계, 플랫폼업계 모두 반발하고 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증상이 급변하는 소아 질환의 특징, 진단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비대면 진료는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플랫폼업체들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육아 가구의 고통을 외면한 결정”이라며 “소아과 대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고 했다. 이어 “수혜자를 대폭 축소해 피해와 불편을 국민에게 떠넘겼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부터 한시 허용돼 4월 말까지 3년여간 1419만 명을 대상으로 3786만 건의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다. 하지만 의료계가 주장하는 것 같은 심각한 부작용은 보고되지 않았다.
해외선 대부분 초진 허용
현재 주별로 정책이 다른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주요 7개국(G7) 국가인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가운데 초진을 제한한 국가는 이탈리아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초진을 제한 없이 허용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단골의사(주치의)가 아니더라도 비대면 초진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예외 규정을 추가하는 등 규제 혁파에 나섰다. 주치의만 초진이 가능하다고 알려진 영국 프랑스 독일도 주치의가 아니더라도 비대면 진료를 볼 수 있게 했다.예외적으로만 비대면 초진을 허용한 한국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뒷걸음친 것이다. 한국에서 비대면 초진이 불가능하게 된 건 ‘책임 공방’ 논란이 불거져서다. 비대면 진료로 오진이 나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것이다.
비대면 사업 확대 발목
의사들이 비대면 진료에 뛰어들 유인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복지부는 의사들에게 ‘비대면 진료에 관한 행동지침’ 등을 공유할 예정이다. 이에 따르면 진료실 외에서 비대면 진료를 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 즉, 심야 시간 소아과 비대면 진료를 보기 위해서는 의사가 퇴근도 하지 못하고 진료실에서 계속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월 전체 건수의 30% 이하만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다고 한 규정도 비대면 진료 확대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평가다. 복지부는 의료기관과 약국에 각각 진찰료와 조제기본료 외 ‘시범사업 관리료’ 30%를 가산하겠다고 발표했다. 비대면 진료를 하면 의료기관과 약국이 수입을 더 가져가는데, 과도한 수가 청구를 막기 위해 제한을 두겠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현재 병원별로 비대면 진료 건수는 전체 진료 건수 대비 1%에 불과하다”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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