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1일 14개 부처 장·차관을 불러 모아 “포퓰리즘에 기반한 정치 복지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국민 행복을 위한 사회보장 역시 성장과 함께 갈 수 있도록 고쳐달라”고 말했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사회보장전략회의에서다. 윤 대통령은 “사회보장 서비스의 질을 더 고도화해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을 견인하는 쪽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직접적인 ‘현금 복지’는 취약계층으로 한정하되 아이돌봄, 노인돌봄 등 각종 ‘서비스 복지’는 취약계층뿐 아니라 일부 자부담을 전제로 중산층까지 확대하고, 민간 참여와 경쟁을 늘려 서비스 질을 높이는 방향을 제시했다. 복지 제도 수술에 나선 것이다.
실제 한국은 2025년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2040년이면 이 비중이 35%로 높아진다. 복지 예산이 이미 연간 중앙정부 예산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데, 복지 지출은 꾸준히 늘고 있다.
정부는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해 현금 복지는 취약계층에 한정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도 “현금 복지는 선별복지·약자복지로 해야지 보편복지로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대신 서비스 복지는 중산층까지 대상을 넓히기로 했다.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복지 대상을 소수 취약계층으로만 한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현재 주로 중위소득의 140~160%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지원하는 노인맞춤돌봄, 지역사회서비스바우처 등의 소득기준 상한을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가족이 아프거나 장애를 갖고 있어 가족돌봄에 상당한 시간을 쓰는 청년이나 중장년층 지원도 확대할 계획이다. 능력에 따라 비용을 차등 부담하더라도 최소한 소득이나 나이 때문에 복지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일은 없게 하겠다는 취지다.
복지 대상을 중산층으로 확대하면서 늘어나는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복지 서비스에 경쟁 원리를 도입할 계획이다. 현재 아이돌봄은 시·군·구별로 서비스 제공 기관이 한 곳만 지정돼 있는데, 앞으로는 복수 지정을 허용하고 부실 기관 퇴출도 늘릴 방침이다. 그동안 엄격히 통제됐던 어린이집 특별활동비 상한은 연령·수요별로 차등화하고, 돌봄 이용료도 일정 부분 자율성을 높이기로 했다.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취약계층 위주로 주어지는 사회서비스를 일부 자부담을 도입해 중산층으로 확대하고, 적극적인 규제 개선을 통해 민간 혁신기업을 위한 투자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그동안 전적으로 정부 재정에 의존하던 복지 서비스가 ‘산업’으로 성장하면 일자리 창출 등 경제 성장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사회복지서비스의 일자리 창출 효과는 사업비 10억원당 26.4명으로 전체 산업(7.4명)보다 월등히 높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금 복지는 취약계층 중심으로 두텁게 보장하고 서비스 복지는 민관 협업 기반으로 중산층까지 확대해 복지 수요 충족과 일자리 창출을 동시 달성하겠다는 것”이라며 “(서비스 복지 확대가) 내수 활성화와 세수 확보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단순화를 통해 국민들이 내가 국가로부터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역대 정부가 하지 못한 것을 이번에 과감하게 해보자”고 강조했다.
구조조정의 걸림돌인 ‘부처 이기주의’에 대해선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로 질타했다. 윤 대통령은 “자기 중심, 자기 부처 중심으로 판단하면 부패한 것”이라며 “저는 그런 것을 뇌물 받아먹는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들로 본다”고 했다.
오형주/황정환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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