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미국에 이익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오판으로 시작된 전쟁이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반 러시아, 친 서방 정서를 불러일으켰고 미국의 동맹국 간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엔 이스라엘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월터 러셀 미드 월스트리트저널(WSJ) 칼럼니스트는 30일(현지시간) '푸틴의 전쟁이 미국의 기회'라는 칼럼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아래는 칼럼 전문.
--------------
미국에서 정책적 대화를 하다보면 종종 우크라이나가 문제라고 가정한다. 우크라이나가 중국에 집중해야할 관심을 분산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러시아의 확전과 보복을 두려워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군대를 지원하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살리는데 소요될 비용을 걱정한다.
이런 우려도 사실이고 일리가 있지만 핵심을 놓치고 있다. 푸틴의 오판과 그릇된 계획으로 일어난 잘못된 전쟁은 우크라이나에서 국민적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미국과 가장 확고한 이해관계를 지닌 강력한 신세력이 될 것이다.
지난주 키이우를 방문했을 때 기업 임원과 소프트웨어 전문가, 러시아가 부차를 점령했을 당시 생존자들, 마리우폴 참전용사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은 불만이 많았다. 국가는 계엄령 상태이고 부패는 만연해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사는게 힘들어진 상황에서 임시 대피소에 60명이 공동 주방을 사용할 정도로 일상은 고난의 연속이다.
러시아가 쏜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등 전쟁으로 인해 모든 가정이 피해를 입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나 돈바스 지역을 평화와 맞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냉정했다. 그들은 기나긴 전쟁과 힘겨운 평화를 예상하고 있다. 마리우폴 전투에 참전한 한 군인은 "할아버지가 러시아와 싸웠다"며 "내 아이들과 손자들도 러시아와 싸워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말은 모든 군인과 국민들에게 울려 퍼졌다.
오늘날 우크라이나를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은 수세기에 걸친 억압을 겪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폭력이 절정에 달한 뒤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로 결심했다. 또 독립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개인적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도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것 같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러시아 내전, 스탈린의 대량 학살로 우크라이나는 20세기 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이제 푸틴과 모스크바 언론의 선동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도 충분히 고통을 겪을 만큼 겪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이 사태가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 서방이 언제 어디까지 그들을 지원할지 모르지만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 이 불의 세례를 받은 뒤 우크라이나는 검증된 군대를 보유한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이다.
또 전략적 지형을 변화시킬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폴란드 및 발트해 연안 국가들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함께 러시아의 팽창에 대항하는 방어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위험이 지속되는 한 이 블록은 대서양 동맹을 강화하는데 전념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을 필수 파트너로 간주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패배로 인식될 전쟁이 끝나면 미국에 강력한 새 동맹을 창출하고 그 이상으로 미국 동맹의 가치를 강조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같은 국가가 세계 초강대국으로 인식돼온 러시아를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은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를 강화시킬 것이다.
물론 위험은 여전히 높다. 푸틴의 전쟁은 정보화 시대의 첫 번째 주요 국제 분쟁이다. 동시에 상당수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정보기술(IT) 전문가를 보유한 우크라이나는 새로운 전쟁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때로는 일선 병사들이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받은 돈으로 직접 구입한 기성 장비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우크라이나의 기술 전문가들이 수적으로 열세인 우크라이나 군대가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쟁이 시작될 때 입대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보병 여단에서 잘 나가는 일자리를 버리고 입대한 신병들과 함께 비공식 부대를 구성했다. 이들이 전장 정보를 분석하는 방법을 개발해 러시아 계획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미들은 미국 기업과 미국 국방부와 더욱 긴밀한 파트너십을 원한다. 이스라엘의 기술 부문과 미국의 긴밀한 협력이 미국 역량을 강화한 것처럼 우크라이나와의 기술협력이 미군과 미국 기업이 중국에 대한 우위를 유자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돕는 게 감정에 치우쳐 하는 자선사업은 절대 아니다. 인도·태평양에 집중해야할 노력을 분산시키는 것도 아니다. 맹목적이고 어리석은 푸틴이 미국에 절호의 기회를 줬다. 우리는 이 기회를 양손으로 붙잡아야 한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