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5월 31일 09:3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창출을, 정당의 목적은 정권 창출을 위한 것이다"라는 아주 흔한 경구가 있다.
2001년에 삼성전자 휴대폰 브랜드 ‘애니콜’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2~3%대였다. 당시 LG전자 휴대폰 브랜드 ‘화통’의 시장 점유율은 그 이하였다. 2000년대 초반 세계 이동전화 시장을 이끌던 회사들은 핀란드 회사 노키아, 미국 회사 모토롤라, 스웨덴의 통신장비 회사 에릭슨, 독일의 통신장비 회사 지멘스 그리고 일본의 가전회사 소니 등이었다.
그 당시 광화문의 어느 경영전략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세계 통신 시장을 분석하는 엑셀 파일을 작성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 몇 년 전인 1995년 삼성그룹은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습니다"라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내면서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되겠다는 선언을 했었다. 2~3%대의 시장점유율 숫자를 바라보면서, 삼성전자가 노키아, 모토롤라, 지멘스, 소니와 같은 회사들을 능가하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과연 올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시절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MBA 학위를 위해 떠날 때, 필자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이러했다. 기업은 손익분기를 넘어서는 이익을 창출해야 하고, 시장 점유율 1%대 회사는 10%대 회사를, 10%대 회사는 과점 수준의 시장 내 선도기업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MBA에서 배우는 것은 회사가 이윤 창출과 이윤 극대화 (또는 주주 가치 극대화)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1977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25만 달러를 애플에 투자하면서 애플의 3대 주주가 된 마이크 마쿨라는 애플 투자 직후에 북캘리포니아 숲속의 집으로 찾아온 젊은 스티브 잡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결코, 결코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하지 마세요.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하면 사업도 성공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돈도 벌 수 없습니다."
세계 최초의 반도체 회사 페어차일드와 인텔의 초기 직원으로서 보유 지분을 팔고 32세에 은퇴한 후 캘리포니아 북부 숲속에서 가족들과 한적하게 살고 있던 사람이 한 말치고는 기이하다.
한편 세계 금융계의 연금술사 조지 소로스는 그렇게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어떤 느낌이냐고 질문한 전기(biography) 작가에게 이렇게 답했다. "돈은 내 일의 재료(material) 일 뿐이요. 나는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을 가지고 있고, 돈을 번다는 것은 내 가설이 맞았다는 증명일 뿐, 난 돈 그 자체를 벌기 위해 일을 하지는 않아요."
경영학을 공부하게 되면 누구나 마주치게 되는 구루 피터 드러커는 간결하게 말한다. 기업의 목적은 고객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기업 활동은 마케팅과 혁신이고 나머지는 부가적인 활동일 뿐이라고.
그렇다면, 기업의 존재 목적이 이윤창출이라는 말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기원을 따져 보자면, 17세기 말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뉴턴의 3대 운동 법칙은 물체의 무게와 속도 두 개의 측정 가능한 지표로 우주 운행의 기본 질서를 설명하여 2천 년 동안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현상 설명 방식에 만족하고 있었던 17세기 유럽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뉴턴의 이런 사고방식은 유럽인들에게 몇 가지 측정 가능한 지표를 기반으로 사회 현상의 기본 법칙을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했다. 그래서 사람(구매자)은 효용을 극대화하고 회사(공급자)는 이윤을 극대화한다는 가설을 기반으로 수요 공급의 균형을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의 가격을 결정하는 고전경제학의 우아한 이론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을 설명하는 무수히 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효용을 극대하 하고자 한다는 철학을 가졌던 존 스튜어트 밀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사회가 지향해야 할 최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이듯이 만일 인류 모두의 뇌를 담가 놓을 수 있고 뇌가 요구하는 전기 자극을 무한히 보내는 매트릭스가 가능하다면 이는 인류 사회 발전을 위한 최선의 최종 단계가 될 수 있을까?
'행복론'의 또 다른 문제는 우리 사피엔스는 사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진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물체로서의 사람은 영양분을 섭취하고 숨을 쉬어 공기를 마시고 물을 마시고, 이를 배출하는 기관들의 집합체다. 하지만, 먹고 마시고 숨을 쉬기 위해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최소한의 생존 조건일 뿐이다. 사피엔스는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진화해 왔고, 인간의 뇌가 언제나 찾아 헤매는 것은 사실 행복이 아니라 '세상과 삶의 의미'다. 우리는 어떤 '의미'를 내면적으로 받아들일 때 놀라운 수준의 인내심을 발휘하기도 한다.
사람이 효용을 극대화하는 존재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존재이듯, 기업도 이윤을 극대화하는 하는 존재가 아니다. 모든 조직은 조직의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리게 되면, 조만간 분열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모인 작은 비즈니스라도 직원들의 동기가 노동을 제공하고 돈을 받아 가는 것뿐이라면 아무리 단순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 사업은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사업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직원 입장에서도 돈 이외에 아무런 동기도 없는 일을 한다는 것은 매우 효율적으로 인생을 낭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존재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답은 기업마다 제각각이다.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 자신만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듯이, 기업도 각자마다 고유의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유지되는 존재다.
MBA에서 공부하던 시절, 필자가 자주 가던 버거집은 인앤아웃이었다. 인앤아웃은 미국 서부 지역의 일부 주에만 운영을 하는데 이유는 근처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로 만드는 햄버거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이 이 햄버거 회사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상추와 토마토가 나지 않는 미국 동부에서 운영할 수 없다.
반면에 미국 전역뿐만 아니라, 세계 구석구석 진출한 맥도날드나 버거킹은 거대한 규모와 막대한 이익을 창출한다. 인앤아웃의 매출과 이익은 작을지언정 인앤아웃도 맥도날드 못지않은 소중한 존재가치를 가진 기업이다. 미국 서부에서 인앤아웃의 치즈 버거를 맛본 사람들은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한 기업의 가치를 판단할 때 이윤 창출 역량 뿐 아니라 그 기업의 존재목적을 찾아보자. 한 기업의 미래 가치를 판단하는 준거로서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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