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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가 공들여 가꿔 온 정원이 열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전기자동차 충전망을 경쟁사들에 개방하기로 했다. 머스크 CEO는 "우리는 테슬라 급속충전망이 '벽에 둘러싸인 정원(a walled garden)'처럼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이번 결정이 미국의 전기차 전환 추세를 뒷받침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전기차 시장의 전체 파이를 키우면서도, 아직 초장기인 충전서비스 산업의 판도를 뒤흔드는 결정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 전기차 시장 탄력 받나
파이낸셜타임스(FT)는 "테슬라의 문호 개방은 미국 전기차 생태계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테슬라는 지난달 25일 미 완성차 제조사 포드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내년 초부터 포드 전기차 소유자가 북미권 전역에 있는 테슬라 급속충전기(슈퍼차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전기차 분야에서는 충전시설도 핵심 시장이다. 전기차 시장조사업체 아틀라스에 의하면 북미 지역의 충전기는 총 13만여개에 이른다. 이중 테슬라의 슈퍼차저는 북미 지역에 1만9000개 가량 설치돼 있다. 북미 지역 급속 충전기 3만2000개 가운데 60%가 테슬라 슈퍼차저인 것이다. 미국 정부는 원활한 전기차 전환을 위해서는 2030년까지 50만개의 공공충전기가 설치돼야 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30분만에 완충이 가능한 급속 충전 설비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위해 조 바이든 대통령은 보조금 카드를 꺼내들었다. 2021년 11월 발효시킨 인프라법을 통해 전기차 충전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총 75억달러의 보조금을 할당했다. 미 정부는 지난해 표준 규격인 CCS를 채택해야 전기차 충전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정책을 바꿨다. 그동안 북미 지역에서는 테슬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사와 충전전문업체들이 CCS1 규격의 DC콤보 충전기를 써왔기 때문에 해당 조항은 자체 규격인 NACS를 고집하는 테슬라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었다.
다만 미 정부는 당시 테슬라에 '살 길'을 열어줬다. 백악관은 "공적 자금이 지원되는 전기차 충전시설은 모든 운전자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며 "테슬라가 급속 충전기를 타사 전기차에 개방하면 보조금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테슬라는 자체 규격 NACS가 미국의 새 표준 규격으로 자리잡도록 총력전을 기울이는 동시에, 자사 충전기를 비(非)테슬라 차량에 개방하기로 한 것이다.
일석이조 될까, 옥석 가리기 될까
테슬라는 이 같은 결정으로 정부 보조금 혜택을 노릴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충전망 운영 수익을 다각화하고 경쟁사 전기차 데이터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아틀라스 설립자 닉 니그로는 "전기차 시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계속 기회를 엿보고 있던 테슬라는 이제 모든 차량에 충전서비스를 제공할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테슬라 충전망이 계속 확장해 더 많은 유형의 전기차량을 수용하면 모든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테슬라 이외의 전기차 충전서비스 기업들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이들의 충전소 환경과 서비스는 형편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기업만이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고, 결국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미국에서는 차지포인트, EV고, 일렉트리파이, 볼타차징 등 충전서비스 전문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CCS1 규격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전기차 붐이 일기 시작했을 때 스팩 합병 등을 통해 증시에 입성했다. 스팩 합병은 성장가능성은 높지만 아직 버는 돈이 부족한 기업들이 택하는 우회 상장 수단이다. 하지만 지난해 긴축(금리 인상) 기조 이후 주식시장이 침체되면서 이들 기업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2021년 2월 상장했던 차지포인트는 현재까지 주가가 69% 가량 빠졌으며, EV고 주가도 상장 이후 약 74% 주저앉았다. 이날도 실적발표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고한 차지포인트 주가는 장외에서 8% 가량 폭락했다.
반론도 있다. 로스캐피털파트너스의 한 애널리스트는 "월가 투자자들이 충전서비스기업들의 주식을 외면하는 이유는 급속한 전기차 보급 확대로 인해 예상보다 더 많은 자본 투입이 필요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으로선 난관에 봉착한 기업은 없다고 보여진다"며 "100% 성장하는 분야가 어려움에 빠질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EV고의 한 고위급 임원은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면 테슬라든 우리 같은 충전전문기업이든 더 많은 충전소를 보유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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