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의사와 더불어 국가가 공인하는 대표적인 전문 자격사다. 특허 문제를 전담하는 변리사도 전문성이 있는 정부 인정 자격증 소유자다. 그런데 법원에서의 소송 대리는 변호사가 전담하고 변리사는 행정소송에 한해 제한적으로만 할 수 있다.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고 민사소송법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변리사들이 이에 반대하며 소송대리권 확대를 요구해왔다. 이 문제로 두 전문가 집단 간에는 십수 년간 공방과 논란이 계속돼 왔다. 21대 국회에도 그런 내용으로 변리사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으나 변호사회와 변호사 출신 의원들의 반대로 이번 국회에서도 무산될 공산이 크다. 특허 침해 관련 민사소송에서 변호사와 소송을 공동 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변리사회 주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변호사들이 이렇게 반대하는 것은 특허 관련 소송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이 분야 법률시장을 변리사에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이익 지키기에 다름 아니다. ‘지대 추구(rent seeking)’ 행위나 마찬가지다. 현대 기업의 덩치가 갈수록 커지고, 특히 대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을 벌이면서 특허권 관리에 매우 민감하다. 다국적 대기업을 상대로 특허소송을 자극하고 관련 컨설팅을 주업으로 삼는 전문가 그룹도 나타나고 있다. 특허권 침해의 시비가 워낙 전문적인 데다 이익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요구도 천문학적 단위에 이르고 있다. 이러니 변호사들이 ‘밥그릇’을 내놓지 않으려 한다. 기존 변호사법의 이런 소송대리권의 기득권 조항은 변해야 한다.
특허소송 법정에 가보면 변리사가 적어준 메모를 그대로 읽는 변호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질적으로 변리·변호를 변리사들이 다 하는데 변호사회가 기존 권한을 내놓지 않으려는 것일 뿐이다. 의뢰인들의 권리 제고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자금력과 인력 부족으로 특허 분쟁에서 대응이 어려운 중소·벤처업계도 변리사의 소송 대리를 원하고 있다.
사법체제의 엄격한 질서가 무너지면 소송 의뢰인이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될지 모른다. 나아가 모든 국민의 법적 이익이 침해받을 수도 있다. 2012년 헌법재판소가 ‘변리사는 민사상 손해배상에 관한 특허침해 소송을 대리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유다. 그 대신 변리사는 특허심판원이 내린 심결을 취소하도록 요구하는 소송에 대해서는 대리인을 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국회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린 것도 그런 맥락의 연장이다.
변호사가 변리사의 전문 지식을 존중하면서 활용하고 있는 현실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특히 로펌에서는 변호사와 변리사가 내부적으로 원팀을 이뤄 쟁송 사안에 대처해나간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준비 과정에서 우수한 변리사들이 재판과 관련된 사실의 확인, 논리의 개발 등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고 변호사는 이에 법률 지식을 덧보태 법정으로 나가기도 한다. 국제 특허 송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변리사가 소송에 참여하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법조계의 우려나 반대를 무릅쓰고 변리사들이 계속 소송대리를 하겠다고 고집하면 이들 역시 영역 확대에 나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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