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특허침해' 공동 소송대리권 달라는 변리사 요구는 타당한가

입력 2023-06-05 10:00   수정 2023-06-05 15:47


변호사는 의사와 더불어 국가가 공인하는 대표적인 전문 자격사다. 특허 문제를 전담하는 변리사도 전문성이 있는 정부 인정 자격증 소유자다. 그런데 법원에서의 소송 대리는 변호사가 전담하고 변리사는 행정소송에 한해 제한적으로만 할 수 있다.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고 민사소송법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변리사들이 이에 반대하며 소송대리권 확대를 요구해왔다. 이 문제로 두 전문가 집단 간에는 십수 년간 공방과 논란이 계속돼 왔다. 21대 국회에도 그런 내용으로 변리사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으나 변호사회와 변호사 출신 의원들의 반대로 이번 국회에서도 무산될 공산이 크다. 특허 침해 관련 민사소송에서 변호사와 소송을 공동 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변리사회 주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찬성] 난해한 특허분야, 변리사가 최고 전문가…자금·인력 달리는 중기·벤처에도 도움
변리사들이 모든 소송대리인으로 나서겠다는 것이 아니다. 변리사가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분야인 특허 관련 분쟁에서 변호사와 공동으로 대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요구다. 이 주장은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1996년 대법원장의 동의를 받아 사법연수원 교수들이 변리사에게 민사소송 실무연수 교육을 한 뒤부터 변리사들이 이 교육을 맡아왔다. 변리사법 개정 논의도 17대 국회인 2006년부터 계속돼왔다. 그 결과 2006년, 2008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를 통과하기도 했으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을 거는 바람에 더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다. 법사위에 포진한 변호사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변리사가 침해한다고 판단해 반대한 꼴이다.

변호사들이 이렇게 반대하는 것은 특허 관련 소송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이 분야 법률시장을 변리사에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이익 지키기에 다름 아니다. ‘지대 추구(rent seeking)’ 행위나 마찬가지다. 현대 기업의 덩치가 갈수록 커지고, 특히 대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을 벌이면서 특허권 관리에 매우 민감하다. 다국적 대기업을 상대로 특허소송을 자극하고 관련 컨설팅을 주업으로 삼는 전문가 그룹도 나타나고 있다. 특허권 침해의 시비가 워낙 전문적인 데다 이익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요구도 천문학적 단위에 이르고 있다. 이러니 변호사들이 ‘밥그릇’을 내놓지 않으려 한다. 기존 변호사법의 이런 소송대리권의 기득권 조항은 변해야 한다.

특허소송 법정에 가보면 변리사가 적어준 메모를 그대로 읽는 변호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질적으로 변리·변호를 변리사들이 다 하는데 변호사회가 기존 권한을 내놓지 않으려는 것일 뿐이다. 의뢰인들의 권리 제고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자금력과 인력 부족으로 특허 분쟁에서 대응이 어려운 중소·벤처업계도 변리사의 소송 대리를 원하고 있다.
[반대] 非법률전문가 소송대리 사법체계 혼란…헌재도 2012년 '변리사 대리 불가' 판단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주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는다. 특정 기술 분야에 전문성이 있다고 법률 대리권을 준다면 변리사뿐 아니라 다른 많은 자격증 소지자에게도 이를 부여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 법률에 따른 법정에서의 소송 대리는 국가가 엄격한 관리로 양성한 법률인이 수행해야 한다. 우리의 민사사법 체제가 그렇게 돼 있다. 전반적인 법률지식과 소송 수행 역량이 부족한 법률 비전문가가 그런 소송대리를 하게 되면 복잡하고 전문적인 소송 절차에 극심한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사법체제의 엄격한 질서가 무너지면 소송 의뢰인이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될지 모른다. 나아가 모든 국민의 법적 이익이 침해받을 수도 있다. 2012년 헌법재판소가 ‘변리사는 민사상 손해배상에 관한 특허침해 소송을 대리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유다. 그 대신 변리사는 특허심판원이 내린 심결을 취소하도록 요구하는 소송에 대해서는 대리인을 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국회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린 것도 그런 맥락의 연장이다.

변호사가 변리사의 전문 지식을 존중하면서 활용하고 있는 현실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특히 로펌에서는 변호사와 변리사가 내부적으로 원팀을 이뤄 쟁송 사안에 대처해나간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준비 과정에서 우수한 변리사들이 재판과 관련된 사실의 확인, 논리의 개발 등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고 변호사는 이에 법률 지식을 덧보태 법정으로 나가기도 한다. 국제 특허 송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변리사가 소송에 참여하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법조계의 우려나 반대를 무릅쓰고 변리사들이 계속 소송대리를 하겠다고 고집하면 이들 역시 영역 확대에 나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 생각하기 - 산업계 외 과학기술계도 공동대리 요구…영업 칸막이보다 소비자 편익 가장 중요
산업계뿐 아니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지식재산단체총연합회 등 과학기술계도 특허분쟁에서 변리사 공동대리 법안 제정을 촉구하는 현실은 중요한 대목이다. 비용 문제에다 소송 기간 줄이기 차원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변호사의 기득권 벽이 두터운 것은 사실이다. 변호사의 자격 권한 의무 등을 규정한 변호사법이 전문 자격사 사이에서 유난히 ‘무서운 법’이라는 사실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변리사뿐 아니라 세무사 법무사 관세사 등과도 업역 다툼이 빈번했지만 아직은 ‘변호사 승(勝)’이다. 어떻든 전문자격사 간의 ‘영업 칸막이’가 너무 견고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궁극적 관점은 소비자(국민) 편익이다. 변리사·변호사 다툼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래 논란을 거듭해온 법 개정안이 이번에도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본격적 토의도 없이 1년 넘게 표류 중인 것은 유감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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