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저성장에 고령화까지…국민소득 3만弗 덫에 갇히나

입력 2023-06-02 18:34   수정 2023-06-12 16:47


1인당 국민소득(GNI)은 원·달러 환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환율이 하락(원화 강세)하면 달러로 환산한 1인당 국민소득이 늘어나는 반면 환율이 상승(원화 약세)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1300원대 고환율이 이어지는 데다 저성장까지 겹친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이 정체하거나 상황에 따라선 작년보다 뒷걸음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구조적 요인으로 저성장·고환율이 겹치면 1인당 국민소득이 장기간 ‘3만달러 덫’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환율 오르면 1인당 국민소득 감소
한국의 1인당 GNI는 2017년 3만1734달러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3만달러를 넘었다. 이후 1인당 GNI는 세 번 감소했다. 2019년(-4.0%), 2020년(-0.6%), 그리고 지난해(-7.4%)다. 이 기간 환율은 각각 전년 대비 6.0%, 1.2%, 12.9% 올랐다. 반면 국민소득이 증가한 2018년(증가율 5.8%)과 2021년(10.5%)엔 환율이 각각 2.6%와 3.0% 내렸다. 이 기간 원화 기준 1인당 GNI는 매년 증가했다. 환율이 국민소득 증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올해는 작년에 이어 고환율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올 들어 1~5월 평균 원·달러 환율은 1294원61전으로 집계됐다. 작년 1292원20전보다 0.2% 올랐다. 지난해 환율이 전년 대비 12.9% 올랐는데 올해도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월별로 보면 1월 1245원34전에서 5월 1327원93전으로 6.6% 상승했다. 환율이 최소한 작년 수준 이하로 급격히 하락하지 않는 한 올해도 국민소득이 급증하기 어려운 구조다.

문제는 고환율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서영경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이날 한은 주최 콘퍼런스에서 “원·달러 환율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하락하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팬데믹 이후 환율 변동 요인이 다양해지면서 환율 하락이 쉽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서 위원은 “경기 요인뿐만 아니라 대중국 경쟁 심화, 인구 고령화, 기업·가계의 해외투자 수요 확대 등 구조적 변화가 환율 변동 요인이 되고 있다”고 했다.
○현실화하는 저성장
저성장 우려가 커진 점도 국민소득에 악재로 지목된다. 저성장이 계속되면 환율 변수를 뺀 원화 기준 국민소득도 둔화할 수 있어서다.

한은은 이날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3%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0.9% 증가했다. 분기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0%대 증가에 그친 건 2020년 코로나 시기 역성장을 제외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분기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올해 성장 전망도 잇달아 하향 조정되는 분위기다. 한은은 최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1.4%로 낮췄고, 산업연구원과 금융연구원도 각각 1.4%와 1.3%를 예상하고 있다.

고령화 등 구조적 변동이 장기 저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5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이미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며 노동·연금 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 고환율이 이어지는 가운데 구조개혁에 실패하고 장기 저성장 기조가 계속되면 국민소득 증가가 3만달러 선에서 정체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정부가 자신했던 임기 중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목표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대에서 정체된 대표적 국가 중 하나가 이탈리아다. 이탈리아는 2004년 이후 지난해까지 17년째 4만달러 벽을 깨지 못했다.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큰 나라 중 유일하게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대에 묶여 있다. 유럽 국가 중 최악의 저출산을 겪는 데다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재정정책, 강력한 노동조합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점 등이 1인당 국민소득 정체 이유로 지적된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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