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물자된 LNG,"무기 대신 에너지 파는 미국" [원자재 이슈탐구]

입력 2023-06-05 07:00   수정 2024-03-17 22:57


전략자산 된 천연가스,"가스파이프 대신 배로 실어 나른다"
전쟁 후 미국 반사이익, 한국은 LNG 값 청구서 쓰나미


미국이 글로벌 천연가스 시장의 패권까지 장악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친환경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석탄·석유 발전은 급격히 줄이는 반면, 과도기 연료로 천연가스를 선호해 수요가 급증했다. 이런 가운데 천연가스 대국 러시아가 전쟁으로 타격을 입자 미국 기업들이 생산과 수출을 늘리고 멕시코만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석유의 부산물쯤으로 여겼던 천연가스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액화천연가스(LNG)는 전쟁, 통화 정책은 물론 경제 건전성과 연관된 전략자산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과 일본에 이어 글로벌 천연가스 수입량 3위 국가인 한국은 2021년과 비슷한 4639만t의 LNG를 수입하면서 전년도 254억5278만달러의 약 두 배인 500억2219만달러를 지출했다. 작년 무역수지 적자 477억달러 가운데 절반 이상이 LNG 값 상승분인 셈이다. 올들어 지난 4월까지 적자도 250억달러를 넘어섰다. 최근 LNG 수입 단가가 낮아지고는 있지만 향후 불안 요소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 가스프롬의 몰락 즐기는 미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1년 이상 지속되면서 LNG 시장에서 미국이 호주, 카타르와 함께 큰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2018년부부터 에너지 수출국이 된 미국은 전쟁 전에도 LNG 수출을 빠르게 늘려왔다. 미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작년 1월 이미 미국은 전체 LNG 수출량의 37%를 유럽으로 보내고 있었고, 2022년 첫 11개월 동안 유럽으로의 수출량을 2021년 같은 기간보다 137% 이상 늘렸다.

노르웨이와 러시아에서 오는 파이프라인으로 천연가스를 수입하던 유럽 각국은 배로 실어나르는 LNG 시장에서 동아시아 국가들과 경쟁하게 됐다. 유럽 가스 공급에서 LNG의 비중은 2021년 19%에서 2022년 33%로 높아졌다. 러시아 파이프라인에 가장 많이 의존했던 독일은 부랴부랴 6기의 부유식 LNG 저장·재기화 시설과 3곳의 터미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전쟁 전 글로벌 1위 천연가스 기업이었던 러시아 국영 가스프롬이 몰락하는 동안 미국 기업들은 유럽 각국과 잇따라 장기계약을 맺었다. 미국은 호주, 카타르와 함께 세계 최대 LNG 수출국이 됐고 인프라를 빠르게 확충하고 있다. 천연가스 정보기업 NGI에 따르면 미국은 2021년 이미 97억6000만입방피트의 하루 생산량(cf/d)을 기록했고, 올 연말엔 126억4000만cf/d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30년까지 유럽에 대한 LNG공급을 연간 500억㎥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기준 생산량의 절반 가량을 유럽에 수출하겠다는 얘기다.

LNG가 전략 자산으로 중요해지면서 미국의 영향력은 더 커질 전망이다. 뉴욕의 에너지·원자재 헤지펀드 어게인 캐피털의 존 킬더프는 지난 3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예전에는 군사 장비를 무기고에 공급했지만 이제는 '에너지 무기고'에 (석유와 천연가스를)주로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S&P글로벌 역시 지난 4월 발표한 원자재 보고서(commodity insight)에서 "수 십년 간 지정학적 자산이던 석유와 달리 천연가스는 물리적·지역적 역학 관계와 더 관련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분석하면서 "천연가스는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석유"란 업계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한국은 러시아 대신 호주서 LNG 구하느라 '곤욕'
LNG시장의 판이 바뀌는 과정에서 한국은 가스값 청구서 '쓰나미'를 맞았다. 한국의 러시아산 LNG수입량은 2021년 286만7103t에서 전쟁이 벌어진 지난해 196만2548t으로 감소했다. 대신 호주(1165만1110t)에서 가장 많은 LNG를 수입했다. 2021년에 비해 수입량을 220만t 정도 늘리면서, 돈은 전년 58억달러 대비 2.5배가 넘는 150억달러를 줬다. 1개월 선물 기준 연초 MMBtu(열량 단위·25만㎉ 열량을 내는 가스양) 당 4.8달러 수준이었던 천연가스 값이 같은해 8월 10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전쟁 발발 후 미국과 중동의 LNG수출선이 대거 유럽으로 뱃머리를 돌린 탓에 현물 가격이 더 오르고 LNG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가스공사의 경우 LNG의 4분의 3 가량은 장기계약으로 도입하고 나머지는 수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현물시장 등에서 확보하기 때문에 가격 상승에 취약하다. 지난해 카타르(972만7434t)와 미국(575만9065t)으로부터의 LNG수입량은 전년에 비해 상당히 줄었다. 대신 말레이시아(551만6147t), 인도네시아(322만5729t) 등에서 천연가스 수입을 많이 늘렸다.

지난달부터 LNG 가격이 코로나 팬대믹 이후 최저 수준인 MMBtu당 2달러 초반까지 떨어졌으나 불안 요소는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정학적으로 불안정한 중동에 대한 LNG 수입 의존도가 30% 내외로 높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인도네시아 루훗 판자이탄 해양투자조정부 장관은 현 "자국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향후 LNG수입을 금지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LNG발전 비중 낮출 수 있을까
지난해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한국이 큰 손실을 본 것은 LNG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며, 이를 낮추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LNG발전 비중은 2012년 25%에서 2021년엔 30%에 육박한 수준이 됐다. 정부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까지 원자력발전과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 LNG 발전은 약 23%까지 낮추기로 했다. 그러나 LNG 발전 규모가 커질 가능성은 적지 않다. LNG 발전은 기저발전 설비에 문제가 생기거나 신재생 에너지 발전 가동률이 저하될 경우 발전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전기차 보급률 급상승 등으로 전력 수요 증가 폭이 예상을 초과하거나, 원전 가동에 차질이 생기는 등 상황에선 LNG발전소의 가동률이 대폭 높아진다. 게다가 노후 석탄발전소를 LNG로 전환하는 등의 영향으로 발전설비 실효용량에서 LNG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더 높아질 것으로 정부는 보고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예상한 2030년의 LNG발전설비 용량의 비중은 43.4%(58.6)로 21.4%(28.9GW)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원자력 이나 신재생에너지(7.8%·10.5GW)보다 훨씬 높아진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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