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업무 지시와 관련된 직장내 괴롭힘 판단 사례
사례 1: 근로자 A는 고등학교 행정실에서 30여년 가까이 종사한 사무직 근로자입니다. A의 상사인 행정실장 B는 최근 비용 지급과 관련해 A에게 약 2시간 30분동안 반복 수정을 지시하며 4 차례나 결재 서류를 반려하였습니다.
사례 2: 재단법인 내 인프라운영팀장인 B는 팀원들이 실수를 하면, 이를 지적하며 "네가 그러고도 담당자냐?", "니들 대학 나왔잖아, 그런데 것도 못 하냐? 대학 나왔으면 이 정도는 해야지"와 같은 발언을 하였고, 팀원이 야근을 신청하면 "야근을 11시까지 하면 아침에 항상 결재문서가 올라와 있겠네"라고 비꼬았습니다.
사례 3: 광고회사에 다니는 정규직 근로자 C는 3개월의 가족돌봄휴직 후 복귀하였으나, 팀장인 D는 복직 전과는 다른 업무를 부여했습니다. C는 기존에 담당했던 업무 성격과 비교해 축소된 업무가 부여되었다고 생각했고, 특히 팀 정산 현황 및 실적관리 업무는 계약직 직원이 담당하던 것이기에 팀장이 의도적으로 본인을 업무에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팀장 D는 업무 분장을 재조정하면서 팀내 셀(워킹그룹) 배치를 변경하였는데 기존에는 없던 F셀을 추가하고, 나머지 셀에는 3~4명의 인원(셀장 및 셀원)을 배치한 반면 F셀에는 셀장 없이 C만을 배치하고, C만 따로 앉게끔 자리도 바꾸었습니다. 이러한 업무 조정 및 자리이동으로 C는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위 사례는 실제 직장 내 괴롭힘 판례 속 사실관계를 재구성한 것으로, 상사의 업무 지시가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었는지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행위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1)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것, (2)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을 것, (3)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일 것을 모두 만족하여야 합니다(근로기준법 제76조의3).
현재 자신의 직급(관리자 또는 구성원)에 따라, 같은 직급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경험에 따라 사례 속 업무상 적정범위에 대한 의견은 개인마다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먼저, 사례 1에서 법원은 “단시간에 재결재가 반복된 것은 수정 사항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지시하면서 여러 번 결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기에 업무 범위 내의 지시”로 보았습니다(대구지방법원 2022. 6. 15 선고 2021나314644 판결).
사례 2에서 법원은 “발언을 하게 된 동기, 전후 상황, 참가인과 위 피해자와의 관계 등을 종합하면, …위와 같은 발언은 상급자로서 위 피해자에 대하여 위 피해자가 처리한 업무의 오류에 관하여 지적한 것”으로서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지 않았다고 보았으며, 야근에 대해서도 “상시적인 야근이 필요한 업무가 아니라고 판단하여…잦은 시간 외 근무신청 행위를 지적한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대전지방법원 2021. 11. 9. 선고 2020구합105691 판결).
마지막으로 사례 3의 업무 분장 변경을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추가 업무가 부여되었고…팀장이 업무분장 조정함에 있어서는 휴직을 마치고 복귀함에 따라 기존 팀원들이 맡고 있는 업무의 연속성도 고려하였을 것”으로 보이기에 부당하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반면 셀 조정에 대해서는 “업무상 긴절한 필요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정황이 없는 점, 매우 이례적인 팀 구성이며, 이러한 배치에 대하여 근로자에게 설명하거나 의견을 수렴한 적이 없는 점 등에 비추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원고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10. 8. 선고 2020가단5296577 판결).
◆각 기업에 맞는 올바른 행동규범 정립하는 게 중요
업무 지시는 상사의 업무 권한에 속하는 것이고 표면적으로는 업무상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보여지기에 업무상 적정 범위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또한, 물리적인 폭력이나 폭언이 수반되는 것이 아닌, 상사의 개인적·업무적 특성에 기인한 행위들? 과격한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마이크로매니징(micromanaging) 등?의 경우에는 관리자의 ‘관리 역량 부족’과 ‘괴롭힘’사이에서 경계를 구분 짓기가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에서 구체적으로 업무상 적정범위의 판단기준을 제시하지 않기에, 각 기업에서 축적된 판례와 정부의 가이드를 바탕으로 행동 규범을 정립해 나가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관련하여 참고할 수 있는 기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직장내 괴롭힘 매뉴얼(2023)에 따르면 (1)그 행위가 사회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2)업무상 필요성은 인정되더라도 그 행위 양태가 사회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상당하지 않다고 인정되어야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었다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판례는 외견상으로 업무 범위 내의 행위로 보이는 행위 중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예시를 ‘업무상 명백히 불필요한 것이거나 수행 불가능한 것을 강제하는 행위’, ‘업무상의 합리성이 없이 능력이나 경험에서 동떨어진 정도의 낮은 업무를 명령하는 행위’로 제시합니다(대구지방법원 2022. 6. 15 선고 2021나314644 판결).
마지막으로 일본의 후생노동성은 과대한 요구(업무상 명확하게 불필요한 것 및 수행 불가능한 것의 강제 업무의 방해) 및 과소한 요구(업무상의 합리성이 없고 능력이나 경험과 동떨어진 정도의 낮은 업무를 명령하는 것 및 업무를 부여하지 않는 것)를 직장 내 괴롭힘의 6가지 행위 유형에 포함시킵니다. [박수경, 2020, 일본의 직장내 괴롭힘 관련 법과 정책. 외국법제동향, 15, pp. 102-105]
◆적절한 업무 지시를 위한 제언
최근 관리자들이 자신들의 업무상 지시나 지도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비쳐질까 걱정하는 경우를 많이 접합니다. 관리자의 이런 고민은 오히려 목표 달성을 위한 정상적 업무 수행을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직 내 중추적 역할을 하는 관리자가 방관자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상급자는 어떻게 구성원의 업무 수행에 적절히 개입할 수 있을까요?
한 연구에 따르면 부하 직원의 효능감과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건설적인 개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1) 구성원이 진정 도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있을 때, 즉 부하직원이 도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경청할 준비가 되었다고 믿을 때까지 지켜볼 것, (2) 권력 관계로 인해 상사의 개입은 구성원들이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느낄 수 있으므로 자신의 역할은 직원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조력자임을 명확히 할 것, (3)단기간에 집중적인 지도가 필요한지 장기적으로 간헐적인 개입이 필요한지 그 강도와 빈도 등을 직원들의 구체적인 필요에 맞춰 조정할 것.[Fisher, C. M. 2020, December 15. How to Help (Without Micromanaging). Harvard Business Review. https://hbr.org/2021/01/how-to-help-without-micromanaging]
결국 상사의 개입이 본인을 위한 것이거나 부정적 감정 표출이 아닌, 조직과 구성원의 성장을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상호 간 ‘신뢰관계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조직에서는 처음 관리자로 승진하는 구성원을 대상으로 승진 후 30·60·90일마다 체크포인트를 두어 각 기간별 관리자로서 익혀야 하는 역량 지표를 만들어 업무 적응을 돕거나, 적절한 코칭 세션을 제공하는 것도 관리자 역량 함양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희수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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