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 자사주 제도 손본다…"주주가치 제고 본목적대로"

입력 2023-06-05 17:04   수정 2023-06-05 17:08


금융위원회가 상장법인의 자기주식(자사주) 제도를 뜯어고친다. 국내 자사주 제도가 주주가치 제고라는 본목적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을 반영한 움직임이다. 금융위는 대주주가 자사주를 편법 활용해 지배력을 늘리지 못하게 하는 등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5일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서울 여의도동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상장법인의 자기 주식 제도 개선’ 세미나에서 “자사주 제도 개선을 위해 각종 정책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며 “주주 보호와 기업의 실질적 수요를 균형있게 고려해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 세미나는 한국거래소와 금융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이 후원했다.

김 부위원장은 “시장에선 자사주에 대해 ‘효과적 주주가치 제고 수단’, ‘대주주 경영권 방어 수단’이라는 엇갈린 평가가 공존한다”며 “특히 국내의 경우 자사주 보유와 처분이 비교적 자유로워 자사주 제도가 본래 목적과 다르게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고 지적했다.

김 부위원장은 인적분할 과정에서 대주주의 지배력이 늘어나는 이른바 ‘자사주 마법’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인적분할에 대해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을 관행적으로 허용하다보니 대주주가 추가 출연을 하지 않고도 배정된 신주만큼 신설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지적이다. 김 부위원장은 “이는 기업이 인적 분할을 할 때 신주 배정을 엄격히 금지하는 영국, 일본, 미국 등과는 크게 다른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우호 지분 확보를 위한 기업들의 자사주 맞교환시 일반 주주의 지분이 희석되는 점도 문제라고 봤다. 이 과정에서 사실상 의결권이 부활해 건전한 경영권 경쟁을 저해한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자사주 소각에 소극적이라는 점도 꼬집었다. 이론적으로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해야 주주들의 주식 보유 가치가 오른다. 하지만 국내 기업 중엔 자사주를 사들여 일정 기간 보유한 뒤 시장에 재매각하는 경우가 많다.

김 부위원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자사주가 사실상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어 온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제기되는 만큼 우리 제도가 글로벌 기준에 비해 미흡한 부분이 있는지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세미나 주제 발표자로 나선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합병·분할 시 자사주에 신주 배정 권리를 인정하는 점, 판례 등에서 자사주 처분과 신주 발행을 다르게 취급하는 점 등을 국내 자사주 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자사주의 보유 한도를 설정하거나 강제 소각하록 하는 방안 △자기주식을 처분할 때 신주 발행과 동일한 절차를 적용토록 하는 방안 △자사주 맞교환을 금지하는 방안 △합병·분할 시 자사주에는 신주배정을 금지하는 등 주주 권리를 정지하는 방안 등을 언급했다. 시가총액 계산에서 자사주를 제외하거나, 관련 공시를 강화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금융위는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앞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 상장법인의 자기주식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열린 자세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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