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서 열린 한국인 벤처투자업계 모임인 팰로앨토리더십포럼에서는 ‘어디까지 한국 기업으로 봐야 할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한국 기관투자가의 해외 벤처기업 투자에서 국적이 중요한 판단 요건이어서다.
전 세계에 흩어진 한인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 기관투자가들이 미국 등 해외시장에 진출한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실리콘밸리에서 힘을 얻고 있다. 좋은 한국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해 이들을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으로 키워내고, 이를 바탕으로 ‘범코리안 네트워크’를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부분은 어디까지 한국 스타트업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다. 현재 KVIC 기준은 한국 국적을 가진 창업자가 지분 30%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고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한국 기업을 만나볼 수 있다. 한국 국적자가 한국에 설립한 기업의 미국 법인이나 사무소가 있는가 하면, 한국 국적자가 미국 현지에 본사를 두고 설립한 스타트업도 있다. 또 미국에서 사업하는 과정에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한국인이나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 3세가 설립한 회사도 있다.
KVIC 기준에 따르면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한국계가 세운 회사는 엄밀히 말해 한국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KVIC 자금이 들어간 벤처펀드가 투자를 고려할 때 한국 기업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한국에 지사를 세우고, 한국인을 고용하며, 한국에서 사업하고 있어도 창업자 국적에 따라 투자 유치에 불리함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지난해 나스닥에 상장한 법률정보 인공지능(AI)업체 피스컬노트도 팀 황 창업자의 국적(미국)에 따라 한국 기업이 아니다. 한인 2세 에이프릴 고가 창업해 2021년 20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헬스케어 플랫폼 스프링헬스도 KVIC 기준으로는 미국 기업이다. 이들을 한인 커뮤니티로 끌어안고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누려면 국적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완화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
김명선 KVIC 미국사무소 센터장은 “미국에서 만난 한국계 창업가 대부분은 자신의 뿌리인 한국에 무엇이라도 기여하고자 한다”며 “한국계 스타트업에 폭넓게 투자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