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기차 충전기 시장, 50% 먹겠다" SK시그넷의 도전
10조원 보조금 풀리는 시장 선점 출사표…3년 내 매출 6배 목표
전기차 충전망 여는 테슬라..." 무섭지 않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동북쪽으로 20마일 떨어진 플레이노(Plano). SK시그넷의 간판이 커다랗게 보인다. 급팽창 중인 미 전기차 충전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SK시그넷이 지은 최첨단 충전기 공장이 5일(미 중부시간) 준공식을 가졌다. 미국 최초로 400킬로와트시(kWh)급 충전기를 연 1만대 규모로 양산하게 된다.10조원 보조금 풀리는 시장 선점 출사표…3년 내 매출 6배 목표
전기차 충전망 여는 테슬라..." 무섭지 않다"
400㎾급 충전기는 현재 시장에 나온 충전기 중 충전 속도가 가장 빠르다. 시판 중인 전기차 중 GM의 허머, 포르쉐의 타이칸 만이 시간당 350㎾의 전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배터리를 갖추고 있다. 용량이 더 커질 미래 전기차까지 수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테슬라와 현대 아이오닉5는 시간당 230㎾를 충전할 수 있다. SK시그넷의 400㎾급 충전기를 쓰면 아이오닉5의 경우 15분이면 80%까지 충전이 가능하다. 한번 충전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400㎞ 이상)를 이동할 수 있다.
미국의 전기차 시장은 급속히 커지고 있다. 미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기차 판매는 2011년 전체 자동차 시장의 0.2%에서 2021년 4.6%로 증가했다. S&P글로벌은 2030년까지 시장의 40%에 도달할 것으로 본다. 50%를 넘어설 것이란 더 낙관적인 예측도 있다.
전기차 시장 확대와 함께 충전기 시장도 덩달아 팽창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통과로 미 연방정부는 향후 5년간 75억 달러를 충전망 확대에 투입한다. 고속도로 주변 50마일마다 충전소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이와 별로도 주정부들도 보조금을 지급한다.
테슬라, 일렉트리파이 아메리카(Electrify America), 이브이고(EVgo) 등 미국 내 주요 충전소 운영 사업자(CPO)는 이런 보조금을 노리고 충전망 확대에 발 벗고 나섰다. SK시그넷이 미국에 초급속 충전기 공장을 서둘러 설립한 이유다.
CPO가 충전기 설립비용의 80%까지 주는 연방정부 보조금을 타려면 몇 가지 요건을 맞춰야 한다. △미국 내 최종 조립 및 충전기 외함에 미국산 철강을 쓸 것 △150㎾급 이상으로 4대 이상을 동시 충전할 수 있도록 최소 600㎾급의 충전 능력을 갖출 것 △충전 시 안전결제방식을 쓸 것 등이다. SK시그넷이 텍사스 공장에서 제조하는 400㎾급 충전기는 이들 조건을 모두 충족할 수 있다. 보조금을 노리는 CPO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
신정호 SK시그넷 대표는 "굉장히 큰 충전소 보조금 시장이 열렸고 우리 제품은 미정부 보조금 수령을 위한 요건을 갖췄다"라면서 "곧 CPO들과의 여러 건의 수주 계약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SK는 2021년 시그넷을 인수했다. 지난 2016년부터 충전기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EA, EV고 등 CPO들과 충전소 구축 사업을 함께하면서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충전 안정성을 확보해서다. EA의 경우 1차 사업 때는 SK시그넷 충전기를 약 25%만 썼지만, 2차 때는 67%, 그리고 3차 때는 75%까지 확대했다. 그만큼 기술력과 안정성에 만족했다는 얘기다.
특히 SK시그넷은 초급속 충전기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시장 초기이긴 하지만 2300기 이상을 설치해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충전기 시장은 지난해 34억 달러 규모에 달했고, 매년 30%씩 성장하고 있다. 2025년이면 7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중 200㎾ 미만의 완속·급속 충전기 시장이 38억 달러, 200㎾ 이상의 초급속 시장이 32억 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SK시그넷은 이중 가격이 비싸고 마진이 높은 초급속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2025년 매출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2022년 매출이 16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3년 만에 여섯 배 이상 성장을 목표하고 있는 셈이다. 신 대표는 "2025년 세계 시장의 30%를 차지하겠다"라고 밝혔다.
SK시그넷의 이런 큰 도전 앞에는 '테슬라'라는 걸림돌이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 시장에서뿐 아니라 미국 충전소와 충전기 사업에서도 지배적 사업자다. 테슬라의 '슈퍼차저' 스테이션은 미국 내 1800여개에 달하며 충전기로만 따지면 1만7000여개가 있다. 그동안은 테슬라 차용 전용으로만 충전소를 운영했지만 이제 외부 전기차에도 개방하기 시작했다. 내년 말까지 7500개를 개방한다고 발표한 상태다. 충전기를 자체 생산하는 테슬라가 개방을 확대하면 SK시그넷과 간접적 경쟁이 심화할 수 있다.
테슬라의 슈퍼차저는 150㎾ 충전기가 많고, 최근 250㎾ 충전기를 늘리고 있다. 충전 속도 측면에서 SK시그넷의 400㎾ 제품이 경쟁력이 있다. 신 대표는 "테슬라가 충전 속도를 250㎾로 올리고 개방을 확대하면 점점 더 강한 경쟁자가 될 것으로 본다"라면서도 "테슬라 슈퍼차저는 테슬라 전용으로 만들어져 다른 전기차와 충전 호환성이 떨어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SK시그넷 충전기의 경우 수년간 다양한 전기차에 대한 충전 호환성과 안정성을 검증받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SK시그넷은 1메가와트(M㎾) 충전기를 개발하고 있다. 충전기 하드웨어뿐 아니라 운영 소프트웨어와 유지보수 서비스까지 사업 대상도 확대하고 있다. 충전 관련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가 되겠다는 것이다. 또 충전 대상도 전기차에서 도심항공교통(UAM) 등 미래 운송 수단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날 준공식에는 텍사스주 정부의 아드리아나 크루즈 경제개발국장, 플레이노의 존 먼스 시장과 이브이고(EVgo) 등 주요 고객사,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등 핵심 협력사 관계자 150여명이 참석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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