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양극재 제조 기업들이 필수 원료인 전구체 자체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전구체는 배터리 양극재 가격의 70%를 차지하는 핵심 원료라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중국 수입 의존도가 90% 이상으로 높기 때문에 수급처를 다양화하겠다는 목적도 깔려 있다. 앞으로 전구체 생산을 더 늘려 미국 유럽 등 글로벌 각국의 규제 정책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전구체 자체 수급 확대의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이다. IRA에 따르면 배터리 광물을 가공할 때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생산하는 부가가치가 전체의 50%를 넘어야 한다. 이런 과정으로 제조한 광물 비중이 40%(올해 기준) 이상이어야 해당 광물을 적용한 전기차가 대당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전구체는 광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한국에서 생산하면 IRA 규정에 부합하는 소재를 공급할 수 있다. 중국에서 생산한 광물 비중을 줄여야 하는 글로벌 완성차·배터리 업체들은 국내 소재업체에 전구체 공급 확대를 요청하고 있다.
중국 배터리업계도 한국 기업에 손을 내밀기는 마찬가지다. 미국과 FTA를 맺은 한국에 진출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중국 전구체 기업들도 한국 양극재 기업들이 큰 고객”이라며 “중국에서 원·소재를 가져와 한국에서 가공하면 한국산으로 평가받아, 중국산 배터리와 소재·부품 사용을 금지하는 IRA를 비껴갈 수 있어 서로의 니즈(요구)가 맞아떨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전구체 투자가 확 늘어난 것은 올해 초부터다. LG화학, SK온,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 등이 국내 전구체 공장 건설 계획을 연이어 발표했다. SK온은 에코프로, 중국 거린메이와 전구체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 지이엠코리아뉴에너지머티리얼즈를 설립했다. 최대 1조2100억원을 투자해 내년 완공을 목표로 2028년까지 연 10만t 규모 전구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LG화학은 4월 전북 새만금국가산업단지에 중국 화유코발트와 손잡고 연 10만t 규모의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양사는 2028년까지 총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연 10만t 규모의 전구체 생산 설비를 구축한다. 이 회사가 국내에 전구체 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것은 지난해 6월 착공한 울산공장(연 2만t)에 이어 두 번째다. LG화학은 지난해 울산 온산산업단지에 고려아연 계열사 켐코와 함께 ‘한국전구체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내년 2분기 양산을 목표로 2만t 규모의 전구체 공장을 건설 중이다.
포스코퓨처엠 역시 화유코발트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전구체 생산 공장과 전구체 원료 중 하나인 니켈 원료 생산라인을 건설한다. 엘앤에프도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올 하반기 내로 구체적인 투자 규모와 파트너사 발표를 앞두고 있다.
전구체 1t으로 양극재 1t을 생산할 수 있어 국내 전구체 공장은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LG화학 엘앤에프 등 배터리 소재 업체들이 국내에 양극재 공장을 늘리는 만큼 전구체 공장도 동시에 필요한 구조”라며 “전구체 공장은 한국 배터리 밸류체인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퍼즐”이라고 말했다.
강미선 기자 misunn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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