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축소는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죽음의 계곡’이 될 것입니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은 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인 부양비(생산가능인구 대비 65세 이상 노인 비중)가 일정 선을 넘어가는 순간 세대 간 갈등이 사회를 잠식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원장은 “이대론 생산인구 한 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며 “생산인구를 늘리기 위해 출산 지원이든 이민자 유치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낸 경제학자로, 국회 1급 공무원인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과 통계청장 등을 역임하며 가는 곳마다 ‘여성 최초’란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10월부터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의 초대 원장을 맡고 있는 그를 서울 삼성동 연구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국의 저출산 현상이 유독 심합니다.
“한국은 서구 선진국이 200년에 걸쳐 이룬 경제·사회 발전을 50여 년 만에 이뤘습니다. 경제 구조가 바뀌면 개인들은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게 됩니다. 인간은 종족 번식과 생존 두 가지 본능을 지니고 있는데 생존 본능만 남아 있습니다. 합계출산율 0.78명(2022년)은 개인들이 얼마나 생존의 문제에 매달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인구가 2020년부터 줄고 있습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70년이면 인구가 3500만 명대로 떨어지고, 노인 부양비는 100%를 넘어섭니다. 한국은 지금 갖고 있는 경쟁력의 상당 부분을 상실할 것입니다.”
▷16년간 투입된 저출산 예산만 280조원입니다.
“마스터플랜부터 먼저 세워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미래 총인구는 얼마로 가져가고 거기에 맞춰 산업 구조는 어떻게 이행해야 할지 국가 차원의 비전이 없습니다. 이젠 모든 부처가 인구 관점에서 정책을 설계하도록 시스템을 짜고,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합니다.”
▷제안할 만한 정책 대안이 있습니까.
“적어도 인구 문제에선 ‘세수가 줄어든다’ ‘예산이 부족하다’ 같은 얘기를 하면 안 됩니다. 독일은 자녀가 둘 있는 외벌이 가구는 싱글보다 평균 14% 세금을 덜 내는데, 한국은 5% 덜 내는 데 불과합니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국가가 조세 제도는 가장 덜 가족친화적이죠. 부모급여도 18세까지로 늘려야 합니다. 정작 돈이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3세부터인데 부모급여는 2세까지만 줍니다.”
▷생산인구 확충 방안은 무엇입니까.
“15~64세인 생산가능인구 범위를 최소 70세까지 확대해야 합니다. 정년도 늘리고 근로기준법처럼 대량생산·고속성장 시대에 맞춰진 법도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게 뜯어고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합니다. 이제 노인이 된 베이비붐세대와 지금의 청년세대는 서로 일자리를 뺏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노인들이 더 일할수록 미래세대는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
▷이민도 확대해야 합니까.
“지금부터 한국 사람들이 아이를 둘씩 낳아도 생산인구 확충으로 이어지기까진 20~30년이 걸립니다. 하지만 이민 확대를 성급하게 추진해선 득보다는 실이 더 클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한국 사람들은 다문화에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양질의 인재를 유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문화를 받아들이는 캠페인부터 시작해 한국이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이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작업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도 재원 문제가 걸림돌일 듯합니다.
“부처마다 중구난방인 저출산 정책을 정비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선 지방의 반발이 있더라도 국세의 20.79%가 자동 배정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손봐 저출산 해소로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중산층까지 증여세 부담을 확 줄여서 세대 간 부의 이동이 가능하게 해야 합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뼈 빠지게 20년을 일해도 원하는 집을 갖기 어렵습니다. 청년 세대의 ‘생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면 출산율을 절대 못 올립니다. 연금개혁도 같은 맥락입니다. 지금의 국민연금은 세대 간 약탈이나 다름없습니다. 연금개혁은 세게, 빨리 해야 합니다.”
▷연금개혁은 저항이 셀 텐데요.
“프랑스를 보세요. 그렇게 저항이 세고 어려운 일이라고 해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할 일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 게 정치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재선에 실패할 순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엔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이 남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정치인의 역할은 재선이나 지역구 챙기기가 아닙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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