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지금과 같은 국가채무비율 증가 추세를 이어간다면 그리스나 포르투갈 수준으로 재정 상황이 악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화와 포퓰리즘 남발로 ‘복지병’을 앓고 있는 일부 유럽연합(EU) 국가들과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재정 적자 감축을 미룰수록 미래의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정부 적자에 상한을 두는 재정준칙 도입을 비롯해 재정 개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정정보원은 유럽위원회(EC)가 EU 회원국의 재정 건전성을 점검하기 위해 3년 주기로 발표하는 ‘재정 지속가능성 보고서’의 분석 틀을 활용해 한국과 27개 EU 국가의 재정위험 수준을 단·중·장기로 나눠 비교했다. 2022년 기준 국가채무비율이 49.7%(분석은 49.0%로 수행)인 한국은 단기 재정위험 분석에선 21개 지표 중 16개 항목에서 ‘저위험’으로 분류되며 28개국 중 일곱 번째로 재정위험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중·장기로 갈수록 분석 결과는 부정적으로 나왔다. 중기 분석에서 한국은 불가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등 9개국과 함께 중위험 국가로 분류됐다. 저위험 국가엔 덴마크 스웨덴 등 8개국이, 고위험 국가엔 벨기에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11개국이 들어갔다. 장기 재정위험성 분석에선 한국은 그리스 프랑스 포르투갈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사이프러스 등 14개국과 함께 중위험 국가에 포함됐다. 저위험 국가는 덴마크 스웨덴 등 5개국, 고위험 국가는 몰타 체코 헝가리 등 9개국이었다.
한국이 2038년까지 국가채무비율을 60% 이내로 유지하려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초재정수지(관리재정수지-이자지출)를 평균적으로 연간 1.0% 개선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채무비율 60%는 EU가 EU 가입 기준으로 제시한 수치로, 한국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재정준칙에서 재정 감축에 들어가는 분기점으로 제시한 수치다. 2070년까지 국가채무비율을 60% 이내로 유지하려면 매년 기초재정수지를 2.2% 개선해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초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수지를 뺀 관리재정수지 중 국가채무에 따른 이자비용을 제외한 수치다. 이자비용이 빠지는 만큼 관리재정수지에 비해 적자 규모가 작다. 2022년 기준으로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5.1%, 기초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4.2%였다.
지난해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건전재정 기조로의 전환’을 내세우면서 지출 증가 속도를 억제하겠다고 나섰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지난해 5%대였던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2%대 중반으로 낮추도록 한 중기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더라도 2026년 이후 국가채무비율은 2032년까지 연평균 0.7%포인트 높아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상승폭이 커진다.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조치가 빠를수록 미래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이 내린 결론이다. 연구진은 “코로나19 대응을 이유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재정을 확대한 2021년 기준으론 기초재정수지를 연평균 8.1% 줄여야 국가채무비율 60%를 맞출 수 있다”며 “재정의 지속 가능성 확보 노력을 중·장기로 미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연 3% 이내에서 관리하는 재정준칙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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