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도 문제인 지방소멸까지 막는다"…日원격의료의 예상밖 효과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입력 2023-06-07 06:32   수정 2023-06-07 07:22



한국과 일본 모두 코로나19를 계기로 초진부터의 원격의료를 일시적으로 허용했다. 2020년 2월부터 원격의료를 허용한 한국이 일본보다 두 달 더 빨랐다. 일본이 '일시적'이었던 의료법상의 문구를 '영구적'으로 바꾼게 한국과 차이다.

나가사키현 고토열도의 고토시 등 7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하는 이동식 원격의료는 원격의료가 지역 사정에 맞게 진화한 형태다.



고토열도는 나가사키시에서 100km 떨어진 섬이다. 고속선으로 1시간반, 비행기로 35분 걸린다. 고속선 편도요금이 9000엔, 비행기는 1만1500엔이니 본토를 오가는건 상당한 부담이다.
면적은 420㎢로 강화도만 하다. 낙도지만 인구 3만7000명의 규모가 있는 섬이다.



한국의 지역 공공의료원이 연봉을 3억~4억원씩 내걸고도 의사를 못 구해 애를 먹는 것과 달리 고토열도에는 의사도 많다. 현재 28개 의료기관에 66명의 의사가 근무한다. 고토시에는 인구 238.4명당 1명의 의사가 있다. 일본 전체 평균인 267명당 1명에 비해 의사가 많은 지역이다.

문제는 병원과 의사가 고토시에 몰려 있어 다른 지역 주민은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섬 반대편 마을 다마노우라초에서 고토시를 가려면 하루 세 편 뿐인 노선버스로 80분이 걸린다.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58.6%에 달해 병원 가기를 포기한 사람이 늘어났다. 낙도일수록 고령화율은 더 높다. 일본 전체와 나가사키현의 고령화율이 각각 29.1%, 33.7%인 데 비해 고토시는 42.1%다. 고령화율이 50%를 넘는 지역도 적지 않다.

고령자들이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지 못하면 만성질환이 중증화하는 악순환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안방에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받는 의료가 아니라 이동식 원격의료가 ‘의료 난민’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할 진화형으로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이동식 원격의료가 일반적인 원격의료와 다른 점은 원격의료 시설을 갖춘 차량이 간호사를 태우고 환자의 자택 근처로 찾아간다는 것이다. 간호사가 환자의 혈압과 맥박을 재고 의사가 쓰는 전문용어를 설명해 준다.

인터넷이 깔려 있지 않고, 정보기술(IT) 기기 사용이 서툰 데다 의사들의 전문용어를 어려워하는 고령자에게 맞춘 서비스다. 의료보험증 번호를 입력하는 일 등 고령자들이 낯설어하는 절차를 동승한 간호사가 도와준다.



일본에는 255개의 유인도가 있고, 일본인 61만4453명(2018년)이 낙도에 거주한다. 나가사키의 섬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은 12만3048명으로 가고시마, 오키나와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원격의료는 고령화와 지역 쇠퇴로 의료 체계가 붕괴할 위기를 맞은 산간·도서 지역의 구세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왜 나가사키에서 이동식 원격의료가 가장 먼저 시작됐을까. 나가사키는 가파른 언덕이 많은 항구도시다. 이 때문에 원래부터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는 방문의료가 번성한 지역이다. 400명 이상의 환자를 (방문 진료로) 돌보는 의료기관도 여럿이다.



여기에 일찍부터 일본 최고 수준의 의료정보 시스템을 갖췄다는 점이 원격의료의 진화를 가능하게 했다. 가와카미 아츠시 나가사키대 대학원 의사약학종합연구소 주임교수는 "나가사키현 환자의 40% 이상이 적어도 1회 이상 의료정보 공유 시스템을 사용할 정도로 사물인터넷(IoT) 환경이 확립돼 있다"고 설명했다.



원격의료는 일본과 한국이 동시에 안고 있는 문제인 지방소멸을 막는데도 기여한다. 고토열도는 꽤 외진 섬이지만 지난 5년간 1000명이 넘는 이주자가 유입됐다. 대부분 온화한 기후와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을 찾아 온 30~40대 육아세대였다.



고토시가 2021년 3월 실시한 조사에서 '고토시는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응답이 72%에 달했다. 반면 53%가 '의료 서비스가 충실하지 않다'고 답했다. 고토시가 이동식 원격의료 사업을 시작한 이유다.

돈이 들지도 않았다. 이동식 원격의료 차량을 도입하는데는 4818만엔이 들었다. 모두 중앙정부의 ‘디지털 도시 구상 사업’ 예산과 ‘지역 의료 체계 강화’ 지원금을 타내서 해결했다.

나가사키 고토열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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