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LIV 합병…골프 전쟁, 오일머니가 이겼다

입력 2023-06-07 18:11   수정 2023-06-08 02:26


세계 골프 패권을 두고 서로에게 칼끝을 겨눈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후원으로 열리는 LIV골프의 총성 없는 전쟁이 갑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PGA투어와 LIV골프, DP월드투어(옛 유러피언투어)가 합병하기로 하면서다. PIF는 PGA투어 지분 상당 부분을 소유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PGA투어 선수 출신인 골프 해설가 브랜던 챔블리는 “골프 역사상 가장 슬픈 날”이라며 “PGA투어는 골프의 미래를 팔았다”고 혹평했다.

이들 세 단체는 7일 공동 성명을 내고 “골프라는 종목을 전 세계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합의를 이뤘다”며 “LIV골프와 PGA투어, DP월드투어는 사업 권리를 결합해 공동 소유 영리 법인으로 이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2021년 10월 새 투어를 출범하며 PGA투어 선수를 대거 스카우트해 온 LIV골프, 이에 대립해 온 PGA투어·DP월드투어는 2년도 안 돼 한 배를 타게 됐다.
LIV골프 선수들, PGA투어 출전 길 열려
성명을 통해 드러난 합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세 단체가 함께 운영하는 공동 소유 영리 법인을 설립한다. 이 법인을 통해 PGA투어와 DP월드투어, LIV골프를 아우르는 새 투어가 생긴다. 세 단체는 일단 남은 2023시즌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하고, 내년부터 신규 투어를 운영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사우디의 PIF가 새 법인의 독점적 투자자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미국 야후스포츠는 “새 법인의 상당 지분을 보유하는 PIF가 유일한 투자자가 되며, 이 법인이 외부 투자를 받을 때 PIF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PIF가 사실상 세계 골프를 인수합병하는 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제이 모너핸 PGA투어 커미셔너가 새 법인의 최고경영자(CEO)가 되고, 야시르 알 루마얀 PIF 총재는 이사회 회장직에 오른다.

마지막으로는 LIV골프로 이적한 선수들의 PGA투어 복귀를 가능하게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따라 PGA투어와 DP월드투어, LIV골프는 이날 발표와 함께 서로 진행 중인 소송을 모두 취하하기로 합의했다.
‘치킨 게임’에 지친 두 단체
앙숙인 LIV골프와 PGA투어가 돌연 손을 잡은 배경을 두고 외신들은 여러 해석을 내놨다. 일단 그동안 ‘치킨 게임’ 같던 두 단체의 대립이 서로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 PGA투어는 LIV골프 소속 선수들의 출전 금지 처분 때문에 미국 법무부로부터 ‘반경쟁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또 잔류한 선수들을 달래고자 무리하게 상금 규모를 늘려 재정적인 면에서도 타격을 입었다. LIV골프는 선수 이적료로만 수조원을 써가며 투자했으나 시청률에서 PGA투어에 완패하는 등 영향력 확대에 애를 먹었다.

‘사우디 끌어안기’에 나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과 대립 중인 미국은 중국의 석유 위안화 결제에 동조한 사우디와 관계 개선에 나섰다. 미국과 사우디가 세계 골프 패권 전쟁을 끝낸 이날 공교롭게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사우디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났다. PIF 이사회 의장이기도 한 빈 살만 왕세자에게 미국이 LIV골프-PGA투어 합병이라는 선물을 준비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PGA 잔류파, 낙동강 오리알 신세
LIV골프와 PGA투어의 합병 소식이 전해지자 돈 대신 신념을 택하며 PGA투어에 잔류한 선수들은 “한순간에 바보가 됐다”는 분위기다. 야후스포츠는 “타이거 우즈는 앞서 LIV골프로부터 8억달러(약 1조404억원)의 제안을 뿌리쳤다”며 “우즈는 그 돈이 없어도 그만이지만 (세계랭킹 44위) 리키 파울러는 7500만달러(약 975억원)를 받고 LIV골프로 갈 기회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이번 조치로 LIV골프로 넘어간 선수들이 ‘최종 승자’가 됐다는 평이 나온다. LIV골프로 이적하며 거액을 챙겼고, 다시 예전처럼 PGA투어에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적료 덕분에 지난해 스포츠 선수 수입 순위에서 골프 선수 1위(1억3800만달러)에 오른 필 미컬슨(53·미국)이 대표적이다. 미컬슨은 합병 소식에 “오늘은 멋진 날”이라고 소셜미디어에 썼다. 영국 가디언은 “이번 합병은 사우디의 승리”라고 평했다.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PGA투어(1929년 출범, 1968년 PGA로부터 독립)와 통합까지 했기 때문이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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