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작품은 어디 있나요?”
정상화 화백(91·사진)의 전시회에 처음 온 사람들은 이렇게 묻고는 한다. 특유의 단색화를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인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50년간 줄곧 그랬다. 일견 이해가 간다. 그의 그림은 무심코 봤을 때 벽지와 거의 구별이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미술계 반응은 다르다. 그를 ‘단색화 거장’이라고 부르며 극진히 모신다. 한국의 생존 작가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영광이라는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2021년)도 열었다. 작품은 리움미술관과 일본 도쿄현대미술관, 아랍에미리트 구겐하임 아부다비 등 국내외 유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시장에서는 작품이 수억~십수억원에 거래된다. 왜일까.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정 화백의 197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총 40여 점을 소개하는 전시 ‘무한한 숨결’이 최근 개막했다.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만난 정 화백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도대체 뭘 표현한 그림이냐고. 왜 벽지 같은 작품을 그렸고, 거기엔 무슨 의미를 담았느냐고.
“하나 뜯어내고 메우고, 또 뜯어내고 메우고…. 참 바보스럽죠. 하지만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바보스러운 과정, 그 자체가 제 작품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도 결국 반복입니다. 다르게 보면 격자를 구획한 선은 내 실핏줄이고, 작품은 곧 내 심장이 뛰고 철렁대는 모습이지요.”
1932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난 그는 마산중학교 2학년 때 미술의 길에 들어섰다. “수의과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서울대 미대에 지원해 인천사범학교 미술선생이 됐다.
정 화백은 1960년대 후반 아시아 추상미술의 첨단을 걷던 일본 고베로 건너갔다. 그리고 치열한 연구와 실험 끝에 1970년대 초반 지금과 같은 격자 회화 양식을 확립했다. 모티브는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을 위해 브라질에 들렀다가 인부들이 돌을 네모나게 잘라 길을 만드는 모습에서 얻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한복을 지으며 천에 주름을 잡고, 밥을 지으며 도마 위 무를 가지런히 자르던 모습과 겹쳐 보였습니다. 인간의 힘이지요.”
“‘이런 게 작품이면 우리도 예술이나 해보자’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었어요. 사실 맞는 말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업이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지 가려집니다. 당시 앵포르멜(비정형주의)이나 그다음 유행이었던 극사실주의를 하는 작가가 많았습니다. 재주 좋은 사람도 많았지요. 하지만 모두 가라앉고 지금 남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재주가 아니라 노력이 중요해요. 저도 제가 구순이 될 때까지 전시를 열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그저 계속 노력했을 뿐입니다. 매일 새로운 걸 하려고 해도, 매일 비슷한 작업이 나올 때까지요.”
정 화백은 “그림은 보고 느끼는 거지 설명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누군가 내 작품 앞에 발을 멈추고 생각하게 된다면 나는 작가로서 성공한 겁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 정 화백은 “요즘은 기력이 없어서 3~4시간 잡고 있으면 손목이 툭 떨어진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의 꿈이 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직도 재밌는 그림을 많이 그리고 싶어요. 그림 그리는 게 가장 즐거워. 화가 안 됐으면 큰일 날 뻔했어(웃음).” 전시는 7월 16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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