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련공이 없다"…'제조업 강국' 독일도 쇠락 위기

입력 2023-06-08 12:47   수정 2023-06-23 00:01


제조업 강국 독일의 경제가 정점을 찍고 쇠락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인구 감소로 인해 노동력이 부족해지기 시작해서다. 은퇴 인구를 이민자로 대체하지 않으면 경제성장률이 1%를 넘지 못하는 장기 저성장에 진입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독일 개발 은행(KfW)은 올해 초부터 독일 경제가 정점을 찍은 뒤 쇠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경제 성장의 기반인 노동력이 감소하고 있어서다.

노동력 감소 추이가 계속되면 경제 성장률이 장기간 감소할 전망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앞으로 수 십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를 넘기지 못할 것이란 비관론도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비관론에 힘을 실었다. IMF는 올해 초 독일 경제에 대해 "고령화의 여파가 경제에 미치고 있으며 앞으로 수년간 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이비 붐 세대(1945년~1963년 출생)가 본격적으로 은퇴를 시작하며 독일 노동 인구가 큰 폭으로 감소하기 시작해서다. 향후 10년간 독일에서 은퇴하는 노동자 수는 약 300만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노동인구의 7%에 달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선 매년 40만명 이상의 신규 노동자가 필요하다.

다른 선진국과 달리 독일의 노동인구가 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여성의 노동참여율이 저조해서다. 2005년에 처음으로 여성의 경제 활동률이 50%를 넘길 정도였다. 20여년 간 지원 정책을 통해 경제 활동률을 10%포인트 이상 끌어 올렸다. 하지만 고령화로 인해 노동력 확대에 한계 다다랐다는 평가다.

독일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 정책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앞서 후베르투스 하일 노동부 장관은 "숙련 노동자를 유치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일 장관은 지난 5일부터 안나레나 배어복 외무부 장관과 함께 숙련공 유치를 위한 남미 순방에 나섰다.

2015년부터 시리아 내전 난민과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대거 유입됐지만, 미숙련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제조업의 생산성을 제고할 수 있는 숙련공이 절실하다는 분석이다.. 독일 정부는 지난 10년간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출신 숙련공에게 발급하는 비자 규모를 확대했다. 과거에는 동유럽에서 숙련공이 대거 유입됐지만, 이 지역의 소득 수준이 상승하면서 이주 행렬이 끊겨서다.

하지만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사회 갈등은 심화하고 있다. 학교 정원이 부족한 데다 이주민을 위한 주택 공급량도 부족한 상황이다. 독일 내부에선 이미 반(反) 이민 주의가 새로운 기조로 확장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내부에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러 나섰지만, 걸림돌이 많은 상태다. 우선 독일 정부는 65세 이상 은퇴자들의 재취업을 장려하는 지원책을 펼쳤다. 지원 정책에도 65세 이상 장년층의 취업률은 9%에 불과하다. 미국(20%), 일본(25%)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노동자 1인당 생산성도 정체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작년까지 미국의 1인당 생산성은 8% 올랐지만, 독일은 2% 성장에 그쳤다.

디지털 경제로 전환하는 속도가 다른 국가에 비해 뒤처지고 있어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 경제 및 사회 지수 조사에서 독일은 27개 회원국 중 13위를 차지했다. EU 평균을 겨우 넘기는 수준이다.



디지털 전환이 더딘 탓에 첨단 기술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챗 GPT 등 인공지능(AI) 기술과 로봇 기술이 독일 제조업을 살리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란 설명이다. 애초에 로봇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을 제조 현장에 접목할 수 있는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독일만의 마이스터(장인) 정신이 끊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도제식 교육으로 이어지던 기술 습득 과정은 이미 위축되고 있다. 마이스터 제도에 지원하는 학생 수도 전체 정원에 비해 10만명 부족한 상황이다.

독일 뮌스터에서 20여년간 정밀기계 공장은 운영해 온 슐레 슈도프 대표는 블룸버그에 "첨단 기술에 다들 정신이 팔려있지만, 이는 제조업을 살릴 수 있는 묘책이 아니다"라며 "젊은 층에서 계속 제조업을 외면하게 되면 공장의 국외 이전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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