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심부전증 과민성대장증후군 역류성식도염 목디스크(경추간판장애) 등을 앓고 있는 77세 여성 A씨. 매일 5개 의료기관에서 처방받은 34종류에 이르는 약을 복용하고 있다. 많은 약을 먹다보니 복통이 심해 이런 증상을 해결하려 설사약, 변비약도 수시로 복용한다.
약사 등이 A씨의 약물이용 상황을 분석했더니 진통제를 여러개 복용하는 데다 특정한 약 부작용 탓에 복통이 생긴다는 것을 확인했다. 겹치는 약을 빼고 꼭 먹어야 할 약만 복용하도록 바꿨더니 복통이 사라지고 매일 먹는 약도 28개로 줄었다.
약사, 의사 등이 여러 약을 한꺼번에 복용하는 환자의 약 복용 상황을 점검해주는 '다제약물 관리사업'을 시행했더니 환자가 갑자기 응급실을 찾거나 입원할 위험이 낮아졌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불필요한 약을 덜 먹고 꼭 필요한 약만 먹게 돼 치료 효과가 높아졌다.
박지영 국민건강보험공단 만성질환관리실장은 8일 재단법인 돌봄과미래가 주관한 '방문을 통한 지역사회 다제약물관리의 의·약 협력방안 토론회'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국회 서정숙·백종헌·이용빈·서영석·최혜영 의원이 공동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렸다.
박 실장은 "인구 고령화 등으로 다제약물 복용자가 2019년 81만5000명에서 지난해 117만5000명으로 증가했지만 관련 수가나 인센티브 등 제도의 미비 탓에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다제약물 복용자는 여러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 10개 넘는 약을 60일 이상 복용하는 환자를 말한다. 약을 잘못 복용하면 입원 위험은 1.32배, 응급실 방문 위험은 1.34배, 사망위험은 1.35배씩 각각 높아진다.
하지만 통합적인 약물 관리 서비스가 갖춰지지 않은 데다 의료기관 중심으로 처방이 이뤄지다보니 여러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약물을 중복 처방받는 사례도 많다. 환자 중심 약물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건강보험공단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약사회, 병원 등과 손잡고 2018년부터 다제약물 관리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1만8125명의 환자가 약사나 의사 등을 통해 자신이 복용하는 약물을 점검받고 처방 상황을 재조정하는 등의 서비스를 받았다.
병원 등에서 환자 약물을 점검해주는 병원사업모델에선 참여한 환자들의 응급실 방문 위험이 47%, 재입원 위험이 18%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00명에게 다제약물 관리서비스를 제공하면 4명 정도의 재입원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환자 100명 당 연간 1689만원의 의료비 지출을 아낄 수 있었다.
약사 등이 약물을 점검하는 지역사회모델에선 응급실 이용 위험이 23% 줄었다.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선 지역 의사회와 약사회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용익 돌봄과미래 이사장은 "다재약물을 복용하는 고령 환자 비율은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만 65세 이상의 다제약물 복용 비율은 10%로 고령화 탓에 그 비율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제약물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지역사회 재가환자에 대한 의사와 약사 간의 협력체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 좌장은 이윤성 서울대의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박 실장과 함께 김광준 연세대의대 노년내과 교수, 장선미 가천대 약학대학 교수, 김성욱 도봉구의사회 회장, 안화영 경기도약사회 부회장, 조규석 부천시민의원 원장, 하태길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 과장 등이 참여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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