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올슨(1928~2023)은 ‘호주의 피카소’라 불리는 국민 화가다. 70년 넘게 활기차고 독특한 선과 색상, 실험적인 스타일로 호주의 풍경과 문화를 그려냈다. 페인팅, 판화, 도자기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했다. 젊은 시절 유럽 여행에서 여러 그림을 마주하며 영감을 얻은 그는 호주로 돌아와 항구도시 시드니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독창적인 선과 색으로 표현했다.
그의 그림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리의 삶과 자연을 변주했다. 하얀 캔버스 속에 호주의 대자연과 수많은 생명체를 품어냈다. 인간이 볼 수 있는 모든 색채,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를 탐구했다. 그런 그가 올 4월 11일 밤, 95세의 나이로 가족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
지난 5월 26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밤이 찾아오자 그의 힘찬 붓질들이 파사드 위에서 춤을 추듯 되살아났다. 생명의 원천과 그 파동을 그려낸 그림처럼 이 행사의 주제는 ‘삶의 활력(Life Enlivened)’. 일생을 바쳐 한 시대를 살아낸 예술가를 떠나보내는 도시의 장엄한 추도식이자 세계인들에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위대한 문화유산을 알리는 화려한 축제였다.
이 추도식은 갑자기 만들어진 이벤트가 아니다. 2009년 시작해 올해 13번째를 맞이한 빛의 축제 ‘비비드 시드니’의 하이라이트 행사다. 올슨은 숨을 거두기 전까지 오페라하우스에 자신의 작품이 미디어아트로 재현된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고 전해진다.
세계에서 가장 큰 빛 축제인 비비드 시드니는 매년 5~6월 약 한 달간 열린다. 올해는 5월 26일 시작해 오는 17일까지 계속된다. 이 기간 축제를 찾는 관광객만 200만 명을 넘는다고. 오직 화려한 조명과 기술만 존재했다면 그저 그런 ‘쇼’에 그쳤을 테지만, ‘비비드 시드니’를 보다 특별하게 만드는 건 그 안에 담긴 콘텐츠와 그에 관한 예술적 고민들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2년간 멈췄을 때를 제외하면 10여 년간 이들은 빛 축제를 통해 호주 원주민과 이민자들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환경에 대한 진지한 메시지를 던졌다. 물론 첨단 기술을 뽐내며 시각적 유희에 집중한 해도 있었다.
오페라하우스에서 매년 상영되는 ‘돛의 조명’ 시리즈가 전부는 아니다. 시드니 중앙역, 동물원, 대학교와 버려진 지하보도까지 온 도시가 화려한 조명을 받아 다른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시드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회, 오감을 자극하는 파인다이닝까지 매일 밤이 축제로 물든다. 어쩌면 ‘비비드 시드니’는 오래된 도시의 미래이자 새로운 시대의 예술을 응축한 ‘축제들의 축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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