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 한계를 느꼈다.” “폐쇄적인 인사 시스템을 깼으면 좋겠다.”
행정고시를 뚫고 엘리트들만 모였다는 기획재정부에서 사무관(5급)으로 일하다가 민간으로 옮긴 청년들의 말이다. 이들은 경직된 인사 시스템과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 후 민간과 유리되며 경쟁력이 떨어지는 공직사회에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최근 한국경제신문사와 한 좌담회에서다.
▷사회=공직을 떠난 이유는.
△백산 쿠팡 프로덕트매니저=젊은 나이에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을 공직에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공직사회의 일하는 방식은 너무 느리고, 나 역시 주어진 레인을 벗어날 수 없겠단 위기감이 들었다. 사무관은 빠른 시간 안에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책을 내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훈련한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창의적인 답을 찾는 데는, 일하는 방식에 한계가 있는 것 같았다.
△김가람 SK 프로젝트리더=정책을 결정하는 힘이 정부에서 의회로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실효성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이현우 피플펀드 정책전략총괄팀장=공무원 10년 차가 되니 앞날이 너무 쉽게 그려졌다. 이런저런 자리를 거치면 과장, 국장이 되는 식이다. 조금 더 불확실성이 열려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정책을 만들 때 숙려 과정을 충분하게 거치지 않는다고 느낀 적도 많았다.
▷사회=공직사회가 전문성을 키워주지 못한다는 건가.
△신병진 SL파트너스 대표변호사=순환보직제에 따라 1~2년마다 보직이 바뀐다. 순환보직제는 장·차관처럼 전체를 총괄하는 제너럴리스트를 육성하기 위한 제도다. 세종시 이전과 김영란법 때문에 민간 인사를 만나기도 어려워졌다. 이런 것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이어지고 공무원의 성장 동력을 꺾고 있다고 본다.
△김가람=공무원은 자신이 맡은 사안의 이해관계자와 전문가들을 만나며 더욱 효과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이 이뤄지는데 그런 기회가 점차 사라져간다. 지금 세종에 있는 공무원들은 국책연구기관을 빼면 맘 편히 볼 수 있는 상대가 없다.
▷사회=요즘 사무관들의 민간 이직이 이어지는 이유는 뭘까.
△이정선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전문관=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해보고 싶은 것에 도전하는 세대다. 기재부 사무관들도 그런 사회 트렌드의 영향권에 있다. 이직한 사무관들은 “우리는 ‘늘공’(직업 공무원)도, ‘어공’(어쩌다 공무원)도 아니고 ‘비공’”이라고 말한다. 비(非)공이 아니라 ‘비욘드(beyond) 공무원’(공무원 너머)이란 뜻이다. 비공은 공무원 출신만의 색깔을 지니고 각자 추구하는 바를 찾아간다. 비공을 그저 공직을 떠난 사람으로 볼 게 아니라 (공무원 사회와 민간이란) 서로 다른 영역을 잇는 매개체로 봐주면 좋겠다.
△김가람=성과에 대한 보상이 점차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과거엔 7~8년 고생하면 유학이나 해외 파견을 통해 잠시 템포를 늦추고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언젠가부터 그 패턴이 무너지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갈아 넣는 삶만 남았다.
△이현우=공무원들이 세종에 동떨어져 있다 보니 꿈도 그만큼 축소되는 게 아닌가 싶다. 윗세대는 청운의 꿈을 품은 야심가들이 많았는데 또래 공무원들은 그런 꿈을 많이 접었다.
▷사회=공직 사회에 제언할 게 있다면.
△백산=한동안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가 공직에 들어왔는데 과연 공공조직이 인재가 갖춘 높은 경쟁력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한국 사회가 너무 위험 기피적이고, 위축돼 있고,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정답만 찾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호용 국민대 경제학부 부교수=공무원들의 퇴사를 그저 공직 이탈로만 볼 게 아니라 공공 인재풀의 확장으로 보고 폐쇄적인 인사 시스템을 깨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복잡해진 사회만큼 공직사회 역시 다양한 수요를 가진 인재를 담을 수 있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회·정리=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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