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6월 13일 10:1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벤처캐피탈(VC) 블루런벤처스(BRV)가 전방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25년간 실리콘밸리의 기술 벤처기업에 집중했던 BRV는 한국의 2차전지, 콘텐츠, 바이오 기업으로 투자 영역을 공격적으로 넓히고 있다. 지난달 인기 캐릭터 라인프렌즈의 지식재산권(IP)를 보유한 라인 IPX에 1200억원을 투자했고, 이달에는 코스닥 신약개발사 메지온에 5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BRV가 국내 증시에 상장된 기업에 투자한 것은 처음이다.
BRV의 성장 투자의 중심에 있는 윤관 BRV캐피탈 매니지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사진)는 13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신기술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거나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한 회사들을 눈여겨보고 있다"며 "모빌리티와 반도체 장비, 배터리 관련 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의 투자 비중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혁신성과 확장성에 투자
윤 CIO는 투자를 결정할 때 중요하게 보는 지표로 혁신성과 확장성을 꼽았다. 메지온에 투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메지온이 개발 중인 약은 전 세계에서 치료제가 없는 희귀질환 신약으로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처방될 수 있다"며 "한국 제약바이오회사가 FDA 승인을 받는 데 기여할 수 있고 소셜임팩트 투자 관점에서 희귀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치료 대안을 제공할 수 있어 투자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메지온은 작년 '폰탄 수술'(선천성 심장기형 수술) 환자의 운동 능력 개선을 위한 치료제인 '유데나필(성분명)'의 FDA 허가를 신청했으나 실패했고 올 초부터 FDA의 권고로 추가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윤 CIO는 "FDA가 임상 조건을 완화해주고 재임상을 독려한 사례가 많지 않은데 왜 메지온에 다시 기회를 줬는지 궁금했다"며 "임상 결과와 FDA 리포트를 살펴보니 재임상시 승인 확률이 상당히 높고 글로벌 시장에서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BRV는 그동안 비상장 회사에 투자했는데 메지온은 상장회사지만 글로벌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고 성장단계 투자로 결정한 것"이라며 "회사가 FDA 승인을 받은 이후 보험 등재와 글로벌 영업망 구축 등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갖출 때까지 재무적 투자자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했다.
윤 CIO는 앞으로 제약바이오 분야가 BRV의 중요한 투자 영역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BRV는 의약품 제조사 에스티팜이 상장하기 전인 2015년 약 200억원을 투자해 상장 후인 2020년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지분을 매각해 554억원을 벌어들였다. 2019년엔 SK바이오팜이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의 판권을 매각한 스위스 아벨테라퓨틱스에 리드 투자사로 참여해 500억원을 투자했다. 아벨테라퓨틱스는 2021년 이탈리아 제약사 안젤리니파마에 약 1조원에 매각됐다.
윤 CIO는 "아벨테라퓨틱스 투자 때 SK바이오팜과 협업하면서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을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상업화하는지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했다"며 "제약바이오 분야는 세계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메지온처럼 가능성 있는 파이프라인을 신중히 발굴해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제2의 에코프로 발굴
윤 CIO는 반도체와 배터리 관련 부품 소재 기업의 투자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BRV는 양극재 핵심 소재인 전구체 생산업체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초기 투자자로 지금까지 약 500억원을 투자했다. 연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추진 중인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기업가치가 2조원 이상으로 거론된다. BRV는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2대 주주로 약 30%의 지분을 갖고 있다. 상장시 지분가치는 최소 6000억원 대로, 10배 이상의 평가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윤 CIO는 "2015년 에코프로머티리얼즈에 투자할 당시 전구체 시장은 중국이 장악하고 있었고 한국엔 생산 설비도 공장도 없었다"며 "장기간 막대한 설비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경영진이 구심점이 돼 사업을 끌고 가지 않으면 엄청난 자본 리스크를 감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의 기술과 양산 계획뿐만 아니라 경영진의 역량과 의지 등 다양한 방면을 실사했을 때 내부 평가가 너무 좋았다"며 "성능이 우수하고 니켈 함량을 높은 하이니켈 전구체를 만들어 중국산과 경쟁해보겠다는 경영진의 비전과 BRV의 투자 기조도 잘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윤 CIO는 "에코프로머리티얼즈가 상장하더라도 구주매출로 투자금을 회수하거나 상장 후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그는 "미·중 관계가 복잡해진 가운데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수혜가 예상된다"며 "상장은 성장 과정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에 해외 시장을 뚫을 때까지 장기 투자자로 남아 회사를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전환이 기회
BRV는 부동산 정보업체 '직방' 시드 투자를 비롯해 게임 개발사 '엔터메이트'에 투자해 성공적으로 자금을 회수했다. 오늘의집, 번개장터, 쓱(SSG)닷컴, 그린랩스 등 플랫폼 기업에도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중 데이터 기반 농식품 스타트업 그린랩스는 '아픈 손가락' 중 하나다. 농산물의 계획과 재배, 유통, 금융 등을 아우르는 애그테크 기업인 이 회사는 올 초 시리즈C 투자를 받으며 기업가치 8000억원을 인정받았지만, 최근 경영 악화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윤 CIO는 "그린랩스에 투자한 이유는 국내 독보적인 엔드투엔드 데이터 기반 농업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로 차후 BRV 네트워크를 통해 월드뱅크 등 다국적 채널을 통해 글로벌 표준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확장 가능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총 거래액(GMV)을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평가받다 보니 매출 확장이 제일 용이한 농산물 직거래 유통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며 매출을 끌어올린 것이 패착이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린랩스는 경영진이 성장의 축과 비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회사의 존망이 걸려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며 "다행히 심각한 선을 넘기 전에 문제를 파악해 관련 사업부를 정리하고 내부 조직을 개편해 사업의 핵심인 팜모닝을 중심으로 데이터 기반 성장을 잘 안정화 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BRV는 그린랩스에 300억원을 추가 투자하고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농산물 분야의 빅데이터 플랫폼으로 키울 계획이다. 윤 CIO는 "투자한 모든 회사가 기대한만큼 모두 성공할 수는 없다"며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신속히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한 리더쉽과 좋은 팀워크, 그리고 네트워크가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CIO는 블록체인, 가상현실(VR) 등 웹 3.0 기술이 확산하는 영역에서도 투자 기회를 찾고 있다. 최근 BRV가 투자한 네오사피엔스는 감정과 느낌이 표현된 음성을 학습해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로 가상의 목소리와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이다. 윤 CIO는 "AI를 활용해 음원이나 글로벌 시장을 타겟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디지털 컨텐트를 생성, 발굴, 추천, 공유, 판매하는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플렛폼 사업 영역도 관심 있게 보고 있다"며 "디지털 콘텐츠 자산을 생성하고 소유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IP의 확장성 있는 모델을 선도적으로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조성한 11억 달러 규모의 펀드로 아시아 지역에서 투자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올 하반기 런칭 예정인 20억불 규모의 글로벌 펀드를 활용해 한국과 아시아의 투자 비중을 꾸준히 늘리겠다"고 말했다.
▶윤 CIO는...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경영과학 석사 학위를 받고 2000년 BRV의 전신인 노키아벤처파트너스에 입사했다. 1998년 핀란드 노키아가 설립한 노키아벤처파트너스는 2005년 사명을 BRV로 바꿨다. 윤 CIO는 전자결제 서비스 회사 페이팔에 초기 투자해 성과를 인정받았고 5년 후 공동 파트너 자리에 올랐다. 현재 BRV의 아시아 성장투자 플랫폼인 BRV캐피탈매니지먼트와 해외본사 글로벌 신규 투자 조합 조성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BRV는 2013년 현재 구글지도의 핵심 기술로 쓰이는 네비게이션 지도 생성 기술 개발, 서비스 회사인 '웨이즈'를 구글에 매각해 2000억원을 벌어들이면서 주목받았다. 2010년부터는 BRV로터스펀드로 국내 기업 투자에 나섰다. 투자한 국내 기업으로는 하이그라운드, 넥스트챕터, 슈퍼메이커스, 핏펫, 네오사피엔스 등이 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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