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보기술(IT)과 모바일뱅킹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SVB 사태가 한국에서 벌어지면 예금 인출 속도가 미국보다 100배 빠를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은 과장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다수의 전문가가 은행의 자본 확충 시급성을 지적한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선별적 예금보호 한도 인상을, 유럽공동체(EC)는 금융기관 정리 제도 개선을 제안했다.
악성 루머를 지금보다 훨씬 더 세게 응징하자는 목소리도 커졌다. 거짓 루머 유포자에 대한 징벌이 고작 ‘5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 1500만원’이다. 일종의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 발동 방안도 거론된다. 뱅크런 발생 시 예금 인출을 잠깐 동안 중단하는 조치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놓친 것이 있다. 바로 정책당국 간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강화다. 금융시장을 전광석화처럼 휘젓는 것이 정보와 자금의 속성이다. 위기 확산도 초고속이다. 이런 환경에선 어느 한 기관이 홀로 잘해봐야 소용이 없다. 정책당국 간 팀워크가 핵심이다.
20세기형 업무 행태를 모바일 시대에 맞게 고칠 때다. 우선 한국은행은 대출창구를 ‘24시간·주 7일’ 열어놔야 한다. 뱅크런이 한은 영업시간에만 발생하지는 않는다. 모바일뱅킹 예금 인출은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다. 그렇다면 중앙은행의 대출창구도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대형건물 스프링클러가 24시간 준비 상태인 이치다. 한은의 대출 절차도 손봐야 한다. 현재는 ‘영업시간 중 대출 신청 접수→실무자 서류 검토→간부 결재→대출 집행’이다. 촌각을 다투는 스마트폰 뱅크런에 대응할 수 있을까. 한밤중에 은행이 긴급 자금을 신청하면 곧바로 한은이 응답해야 한다.
그런데 전제 조건이 있다. 이용 가능한 담보 규모는 한밤중이라도 즉시 파악돼야 한다. 한국예탁결제원 시스템 전원도 ‘24시간·주 7일’ 켜져 있어야 한다. 금융권 전체의 담보 유가증권 관리를 책임진 기관이다. ‘24시간·주 7일’ 대출 프로그램 가동에 한국예탁결제원과 한은 간 상호운용성이 필수인 이유다.
금융감독원과 한은 간 상호운용성 강화도 빠뜨릴 수 없다. 은행은 평소 충분한 담보를 비상용으로 한은에 맡겨둬야 한다. ‘예비적’ 담보다. 그런데 한은에 맡긴 예비적 담보를 금감원이 고(高)유동성자산(HQLA·high quality liquid assets)으로 인정할지 여부가 확실치 않다. “일단 담보로 맡기면 처분이 제한돼 우량 자산이 될 수 없다.” 금감원 입장이다. 은행이 한은에 예치한 ‘차액결제이행용’ 담보를 금감원이 고유동성자산으로 인정한 시점은 2022년 초다.
한발 더 나아가 ‘예비적’ 담보까지 고유동성자산으로 인정해야 한다. 금감원 인정을 못 받으면 은행은 유동성커버리지 비율(LCR)이 떨어지는 불이익을 당한다. LCR 계산식에서 분자(고유동성자산 규모)가 줄기 때문이다. LCR은 ‘30일간 예상되는 순(純)현금 유출액 대비 고유동성자산’ 비율이다. 뱅크런은 한순간에 뭉칫돈이 빠지는 상황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 도입한 게 바젤III 규제다. 일본과 영국은 예비적 담보의 100% 또는 일부를 고유동성자산으로 취급한다. 금감원 협조가 없으면 뱅크런 위기 시 한은 대출에 차질이 생긴다. 양 기관 간 상호운용성이 시급한 대목이다.
예금보험공사는 예금 사고에 대비해 정보력을 보강해야 한다. 실시간 예금 동향 파악이 관건이다. 대만(臺灣) 예금보험기구(CDIC)는 SVB 파산 직후 인터넷전문은행 입출금 동향을 실시간 파악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은-예금보험공사 시스템 간 상호운용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한은의 최종 대부자 역할도 훨씬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집행될 것이다. 모바일 폰뱅킹 시스템이 세계 최고라고 우쭐댈 것만은 아니다. 다음번 스마트폰 뱅크런 사태의 발원지는 한국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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