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30분부터 시작된 2라운드 잔여 경기, 낙뢰로 인한 경기 중단, 우박과 벼락이 부른 2차 경기 중단….
‘단일 대회 3연패’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타수를 잃기 시작했다. 대회 첫날부터 단단하게 지켰던 선두 자리도 막판에 이예원(20)에게 내줬다. 그래도 박민지(25)는 박민지였다. 연장전에서 그림 같은 이글 퍼트로 이예원을 누르고 ‘설해원의 여왕’ 자리를 지켰다.
박민지는 11일 강원 양양 설해원 더레전드 코스(파72·6495야드)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총상금 12억원) 대회에서 3년 연속 우승했다. 최종 3라운드에서 버디 5개와 보기 4개를 친 그는 최종합계 11언더파 205타로 이예원과 연장전에 들어갔고, 연장 1차전에서 승부를 냈다.
이날 우승으로 박민지는 2021년부터 3년 연속 이 대회에서 우승하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KLPGA투어에서 단일 대회 3연패는 고(故) 구옥희(1982년), 박세리(1997년), 강수연(2002년), 김해림(2018년)에 이어 박민지가 다섯 번째다. 박민지의 올 시즌 첫승, 투어 통산 17승이다.
박민지는 최근 2년 연속 6승씩 올리며 자타가 공인하는 ‘KLPGA투어 최강자’가 됐지만, 올 들어선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앞서 11개 대회에 출전했지만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지난달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선 조별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고, E1채리티 오픈에선 커트 탈락했다.
이번 대회에선 달랐다. “3연패를 위해 이번엔 이를 악물고 치겠다”더니, 예전의 아이언 샷과 퍼팅이 살아났다. 그렇게 1라운드와 2라운드를 공동 선두로 마무리하고 최종 라운드를 맞았다. 출발은 좋았다. 13번홀(파4)을 끝낸 상황에서 2위와의 격차를 3타로 벌리며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짓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악천후가 발목을 잡았다. 갑자기 쏟아진 우박으로 경기가 중단되면서 박민지를 따라다니던 좋은 흐름도 같이 멈췄다. 3시간 뒤 경기가 재개됐을 때는 이전의 박민지가 아니었다. 15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이 벙커에 빠지며 보기를 기록하더니, 17번홀(파4)에서 또다시 타수를 잃었다. 단독 선두에서 이예원, 이소미와 공동선두로 내려앉았다. 앞선 홀에서 경기하던 이예원이 18번홀(파5)에서 버디를 기록하면서 한순간 1위 자리가 바뀌기도 했다. 이후 박민지도 18번홀에서 버디를 낚으며 승부는 연장으로 이어졌다.
박민지의 ‘승부사’ 기질은 연장 1차전에서 곧바로 드러났다. 두 선수 모두 2온에 성공했고, 핀까지의 거리도 둘 다 3m 정도였다. 먼저 퍼트에 나선 이예원은 살짝 비켜나가 버디에 그쳤지만, 박민지의 이글퍼트는 홀 안으로 쏙 들어갔다.
승부가 갈리는 그 순간, 이글 퍼트를 성공시킨 ‘강심장’이지만, 박민지는 우승 후 인터뷰에서 “오늘 후반 너무 많이 긴장돼 속이 울렁거리고 숨을 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동안 성적에 연연해 초심을 잃은 것 같았다”며 “다시 초심을 찾기 위해 책을 읽고 일기를 쓰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올 시즌 KLPGA투어는 대회마다 새로운 우승자가 나오는 ‘춘추전국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골프계에선 최강자 박민지가 돌아온 만큼 향후 판도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민지는 이날 우승 상금 2억1600만원을 보태며 시즌 상금 액수를 3억1287만원으로 끌어올렸다. 상금랭킹은 31위에서 5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대상 포인트 부문에서도 70점을 획득해 12위에서 7위로 상승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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