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프이스트-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책상이 없으면 혼수가 아니다

입력 2023-06-13 17:32   수정 2023-06-13 17:33

동생들이 먼저 결혼한 뒤 서른여섯에 늦장가를 가게 됐다. 혼인날이 잡히고 아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겠다고 할 때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집안에 온통 기쁨만 가득했다. 일주일 전에 혼수품을 실은 차량이 들어오자 온 집안이 들썩였다. 그때 아버지가 혼수품 가구들을 둘러본 뒤 짐을 내리지 말라며 한 말이다. “책상이 없는 혼수품은 혼수품이 아니다.” 아버지를 방으로 따라 들어가자 저 말을 두어 번 더 소리쳤다.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나이 들어가며 야단 맞는 횟수는 줄었지만 강도는 더 세졌다. 매장에 전화해 바로 준비해 가지고 오라고 해 수습했다.

책상과 의자를 갖춘 혼수품을 들여오고 나서 아버지가 말씀 중에 인용한 고사성어가 망양지탄(望洋之歎)’이다. ‘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감탄한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위대함을 보고 자신의 미흡함을 부끄러워한다는 뜻으로 쓴다. 장자(莊子) 외편 추수(秋水)에 나오는 말이다. 옛날 황허(黃河)에 하백(河伯)이라는 신이 살았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사는 강을 보면서 그 넓고 풍부함에 감탄했다. 가을 홍수가 져 모든 개울물이 황허로 흘러든 가을날 강의 폭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불었다. 흐름이 너무나 커서 양쪽 기슭이나 언덕의 소와 말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백은 천하의 아름다움이 모두 자기에게 있다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는 강의 끝을 보려고 동쪽으로 따라 내려갔다.

한참을 흘러내려 간 뒤 마침내 북해(北海)에 이르자 그곳의 신인 약()이 반가이 맞았다. 하백이 약의 안내로 주위를 돌아보니, 천하가 모두 물로 그득 차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백이 그 너른 바다를 보고 감탄하며[望洋而歎] 한 말이다. “속담에 이르기를 백 가지 도를 듣고서는 자기만 한 자가 없는 줄 안다[聞道百 以爲莫己若]고 했는데, 이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 만일 내가 이곳을 보지 못하였다면 위태로울 뻔했습니다. 오래도록 내가 도를 아는 척 행세하며 웃음거리가 되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북해의 하신(河神) 약이 웃으며 대답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해 말해도 소용없음은 그가 사는 곳에 얽매어있기 때문이고, 여름벌레에게 얼음에 대해 말해도 소용없음은 그가 시절에 묶여 있기 때문이오. 지금 그대는 벼랑 가에서 나와 큰 바다를 보고, 비로소 그대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으니, 이제야말로 큰 이치를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겠소?” 여기서 망양지탄은 가없는 진리의 길을 보고 스스로 자기가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뜻을 넓게 해석하여 자기의 힘이 미치지 못함을 탄식한다는 의미로도 쓴다.

아버지가 고사성어를 말씀 중에 인용하는 일은 흔했다. 그러나 이날은 유독 길고 자세하게 고사를 설명했다. 아버지는 인생은 대나무 마디처럼 여러 마디가 생긴다. 그때마다 옷깃을 여미고 각오를 새로이 다지는 계기로 삼는다. 결혼은 그중 큰 마디다라며 결혼으로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둘이 사회를 이루어 또 다른 여러 사회에 기여보비(寄與補裨)해야 하는 중대한 변곡점이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결혼은 새장과 같은 것이다. 밖에 있는 새들은 쓸데없이 그 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속에 있는 새들은 쓸데없이 밖으로 나가려고 애쓴다라고 결혼을 정의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미셸 드 몽테뉴가 한 말이다. 아버지는 책상은 새장을 들락거리는 유일한 탈출구다. 얽매이지 마라. 어느 때고라도 책상에 앉아 더 너른 세계로 나가라고 주문했다. 다른 혼수품은 세월이 지나자 퇴락해 버렸지만, 책상은 아직도 쓴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을 경계하는 아버지의 당부는 아직은 어린 손주들에게도 일찍이 일러줘야 할 성품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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