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폴란드 동브로바구르니차에 있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의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 공장. 방진복과 방진화, 방진모자를 착용하고 1공장 생산 라인에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와 옅은 기름 냄새가 훅 끼쳤다. 분리막 원단을 뽑아내는 생산 라인은 약 120m.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설비를 따라 여섯 단계 공정을 둘러보는 동안 사람 직원이 개입하는 모습은 일절 볼 수 없었다.
비닐처럼 흐늘흐늘한 분리막 원단에 고운 세라믹 가루를 입히는 세라믹 코팅(CCS) 생산 라인도 마찬가지다. 공중에 짜인 철골 레일을 따라 30여대의 대차만이 바쁘게 원단을 옮겼다. 이충한 CCS 생산유닛 매니저는 “분리막은 사람 손을 안 탈 수록 불량률을 낮추고 비용도 효율화할 수 있다”며 “고도화된 자동화 공정이 많을 수록 선진화된 공장”이라고 했다. 이 공장이 언론에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세라믹 코팅까지 마치면 ‘얇지만 단단한’ 배터리 분리막이 완성된다. 두께가 얇게는 5㎛(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에 불과하지만 160℃의 고온에 한 시간을 노출돼도 수축률이 5%가 채 안 된다. 열 안전성이 중요한 전기차 배터리의 분리막 분야에서 SKIET가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이유다.
전기차 전환이 빨라지며 한·중·일 업체가 삼국지를 벌이는 분리막 시장도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자국이 아닌 해외에서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을 양산하는 업체는 아직 SKIET가 유일하다.
청주와 증평에 공장을 두고 있는 SKIET는 2020년 중국 창저우 공장에 이어 2021년 하반기부터 폴란드 공장에서도 양산을 시작했다. 2019년 일찌감치 글로벌 생산법인 설립을 결정하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결과다. 특히 유럽 전기차 시장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폴란드에는 총 2조2000억원을 들여 4공장까지 짓기로 했다. 유럽 최초 분리막 생산 공장이다.
박병철 SKIET 폴란드 법인장은 “폴란드는 헝가리 체코 독일 스웨덴 등 글로벌 완성차·배터리 업체들이 공장을 지었거나 짓고 있는 유럽 지역 어디든 빠르면 두 시간, 길어도 사나흘이면 물류를 보낼 수 있다”며 “도레이 상해에너지 WCP 등 경쟁사들도 이제 유럽 공장을 짓고 있지만 이미 안정적으로 양산 중인 SKIET의 우위를 뒤집긴 어려울 것”이라고 자신했다.
연산 3억4000만㎡ 규모로 양산 중인 폴란드 1공장과 쌍둥이인 2공장은 올해 말 양산을 시작한다. 3·4공장(생산역량 각 4억3000만㎡)은 현재 85% 준공돼 내년 말 양산에 들어간다. 4공장까지 가동되면 총 생산 규모는 연산 15억4000만㎡로 유럽을 넘어 세계 최대(단일 공장 기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205만대분 배터리에 들어가는 규모다. 2025년 유럽 분리막 수요의 30%를 SKIET 혼자 공급할 수 있다.
폴란드 1공장은 1년 반 만에 가동률이 70%까지 올라왔다. 박 법인장은 “생산성(수율)도 가동된지 10년 이상 된 한국 공장에 벌써 육박했다”며 “그만큼 생산 역량과 가격 경쟁력이 함께 높아져 1년 내 흑자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4공장은 자동화 설비를 더 고도화해 생산성을 1·2공장보다 30% 이상 더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는 “향후 수요에 따라 5공장도 필요하면 바로 지을 수 있도록 부지를 다져놨다”고 덧붙였다.
SKIET는 이번 기회로 고객사 다변화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폴란드 공장은 현재 그룹사인 SK온 납품 비중이 전체의 80%에 달한다. 이를 50%까지 낮추는 게 목표다.
IRA에 발맞춰 북미 공장 진출도 검토해 연내 확정하기로 했다. 북미 공장까지 세워지면 2025년 이후 SKIET의 총 연간 분리막 생산량은 40억2000만㎡에 달할 전망이다. 박 법인장은 “완전히 새로운 차세대 분리막, 전고체 배터리 소재 등 제품·사업 다각화에도 본사 차원에서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동브라바구르니차=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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