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200억→1조2000억…"커머스계 유튜브 된다" [긱스]

입력 2023-06-20 16:33   수정 2023-06-28 15:10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0억→1100억→3800억→7000억→1조2000억. 여성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가 출시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연도별 거래액 규모다. 불과 4년 만에 거래액이 60배 늘어나며 1조원이 넘는 대형 패션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올해는 거래액 2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에이블리의 월간이용자수(MAU)는 700만 명 이상으로, 국내 패션·뷰티·인테리어 등 버티컬 플랫폼(전문몰) 가운데 1위다.

성장뿐만 아니라 내실도 갖추기 시작했다.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 연속 흑자 달성에 성공했다. 매출과 거래액이 꾸준히 상승하는 가운데 이뤄낸 성과다. 국내 패션 플랫폼 가운데 연간 거래액 1조원을 넘으면서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곳은 에이블리와 무신사뿐이다.

에이블리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강석훈 에이블리 대표(39)는 "무엇보다 훌륭한 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는 "작년부터 스타트업에 위기가 닥치는 것을 느끼고 내실 갖추기에 전사적 에너지를 투입했다"며 "창업 초기부터 구축한 셀러(판매자)와의 동반 성장 비즈니스 모델이 성과를 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에이블리는 서비스 초기부터 자체 물류센터를 기반으로 셀러들 누구나 마켓을 통해 사업할 수 있도록 사입·물류·배송·고객관리 전 과정을 대행하는 ‘에이블리 파트너스’ 솔루션을 운영해 왔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셀러들이 에이블리로 몰려든 결과 에이블리 내 마켓 수는 4만 5000개까지 불었다. 국내 전문몰 중 압도적 1위다.



에이블리는 패션을 넘어 뷰티·라이프·푸드 영역까지 확장했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인의 취향 지도를 그리는 앱'이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개인화 추천 기술을 통해 소비자 취향에 맞는 다양한 상품을 제안하는 슈퍼 앱이 되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시장 진출도 가속화하고 있다. 이미 일본에 진출한 에이블리는 앞으로 대만 등 해외 개척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강 대표는 "글로벌 서비스는 에이블리와 셀러의 상생 기조를 해외로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셀러의 성장이 곧 에이블리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윈윈 구조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다.

다음은 강 대표와의 일문일답.

Q. 3개월 연속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성장에 내실까지 챙긴 비결은 무엇일까요.
A. 연 거래액 1조원 이상에 흑자도 내는 패션 플랫폼은 에이블리와 무신사밖에 없는데요. 무신사는 남성 스타일 대표라면 에이블리는 여성 스타일 대표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일단 저희 팀이 너무 훌륭합니다. 작년부터 스타트업에 위기가 몰려왔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뭘 해야 되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를 했고요. 저희는 몇몇 숫자에 집중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뻔한 거래액이나 매출 이런 건 아니고요. 재무제표를 구성하는 앞단의 숫자들이 있어요. 재무제표가 구성되는 원인과 결과를 파악한 뒤 전사 에너지를 가장 중요한 원인 지표에 모았습니다. 이런 전략을 집중적으로 실행한 뒤 6~7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된 거죠.

Q. 구체적으로 어떤 곳에서 성과가 나왔을까요.
A. 그동안 에이블리가 만들어 놓은 사용자·셀러 규모가 있고, 거기에 비즈니스 모델이 있었기 때문에 흑자가 나오기 시작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셀러들이 이용하는 솔루션에 부과하는 비용들이 있는데요. 셀러들이 만족하지 않으셨거나 셀러 규모가 작았다면 흑자를 내긴 어려웠을 텐데 저희는 풀이 매우 크다 보니 그런 것들이 무난하게 이뤄진 거 같습니다. 또 새로 발굴되는 비즈니스 모델이 좀 있어요. 예컨대 다른 플랫폼이 에이블리에서 광고를 할 수도 있죠.

Q. 에이블리 내 상품 구매도 많이 늘어나고 있겠죠?
A. 저희가 흑자 전환됐다고 발표했는데 매출이나 거래액 등이 적어지면 안 되겠죠. 감사하게도 이런 수치들도 매달 신고점을 찍고 있어요. 작년에 저희가 거래액 1조2000억원을 기록했는데 올해는 2조원 수준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Q. 매출은 어느 정도인가요?
A. 저희가 작년에 매출 1785억원을 올렸고요. 올해는 두 배 정도는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목표를 너무 낮게 잡았나 싶을 정도로 순조로운 분위기여서 구성원들의 자신감과 에너지가 느껴지고 있습니다.



Q. 작년부터 벤처시장에 한파가 몰아닥쳤는데 에이블리는 어려운 점이 없었나요?
A. 팀 내부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업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기보다는 우리 팀이 자만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꾸준히 나갈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게 저희 숙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성 스타일 시장이 매우 좋고, 저희가 사업 전략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겸손하게 지치지 않고 계속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인원 감축 등 구조조정도 없었죠?
A. 저희가 1년에 두 번 연봉을 인상하거든요. 이번에 흑자 전환 기념으로 특별휴가도 줬고요. 저희가 300명 조금 넘는데 인원 수가 아직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닙니다.

Q. 작년에 투자받을 때 기업가치 9000억원을 인정받았는데요. 추가 투자 유치 계획이 있나요?
A. 다음 투자 라운드는 아마 올해 말쯤 할 건데요. 저희가 생각하는 기업가치는 훨씬 높습니다. 작년에는 시장 분위기상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굳이 투자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고요.

Q. 최근 벤처대출 형식으로 5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습니다.
A. 벤처대출을 받은 건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하나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투자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억지로 투자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요. 시장이 다시 좋아지는 상황에서 여유를 갖고 우리 페이스대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신규 투자보다는 대출을 활용했고요. 두 번째는 이게 실제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실리콘밸리 등 선진시장에 정착한 벤처대출이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무조건 유리하거든요. 주식 희석도 덜 되고요.



Q. 에이블리가 패션뿐만 아니라 뷰티·라이프·푸드 영역까지 넓히고 있습니다. 장단점이 있을 거 같은데요.
A. 단순히 거래액을 늘리기 위해 상품 판매를 확대하자 이런 관점으로 접근한 것이 아닙니다. 저희의 관점은 이용자의 취향에 따라서 구매할 만한 상품 구색을 갖추는 데 집중하자는 거예요. 판매자 입장이 아니라 구매자 입장이죠. 에이블리는 이용자가 맘에 드는 옷을 몇 개 클릭하면 AI로 이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 취향 지도를 그립니다. 그러면 화장은 이렇게 하겠구나, 집은 이렇게 꾸미겠구나, 인테리어 소품은 이런 걸 구매하겠구나, 나아가서는 여행은 이런 스타일로 하겠구나, 또 맛집은 이런 데 가겠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이죠. 한국인의 취향 지도를 그리는 서비스를 만들려고 하는 거거든요.

Q. 인공지능을 잘 활용해야겠습니다.
A. 저희가 왓챠 때부터 13년 정도 그것만 해왔기 때문에 잘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사진 앱 스노우가 'AI 프로필'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들이 사진 넣으면 스튜디오 촬영 사진 같은 것을 자동으로 30장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내놨거든요. 저희도 이런 걸 충분히 만들 기술력이 있습니다. 어떻게 잘 포장하고 활용하느냐가 관건이겠죠. 저희는 매달 유저 700만 명이 들어오는 서비스가 됐고, 마켓 4만5000곳이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Q. 기존 패션 플랫폼과 에이블리의 차별점은 무엇일까요.
A. 기존 플랫폼은 브랜드를 인수하고 독점 계약을 맺고, 또 그 브랜드를 미디어를 통해 강조합니다. 그런데 에이블리는 완전 대척점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셀러들이 데뷔하고, 개인 취향에 맞춘 상품을 계속 추천합니다. 그래서 완전히 다른 모델이죠. 기존 플랫폼이 TV라면 저희는 유튜브죠. 그래서 겉으로 볼 때는 '같은 쇼핑 플랫폼 아니야'라고 하겠지만 본질이 너무 다른 플랫폼이죠. 그래서 성장 속도가 차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전문 기업형 셀러보다는 개인 셀러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Q. 셀러(판매자)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A. 초보 셀러들이 많이 겪는 어려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상품 상세 페이지를 만들고 꾸미는 것들이고요. 또 판매 단가를 정하는 것도 어려워하시죠. 그걸 왜 꼭 사람이 해야 할까요. 그냥 상품 사진 찍어서 넣으면 알아서 알고리즘이 보정해 주고, 순서 만들어 올려줄 수 있고요. 상품 매력도와 클릭 수, 유저 반응을 보고 가격과 마진은 이 정도로 하면 극대화된다고 AI가 정해주면 되거든요. 저희가 이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Q. 패션 검색 서비스 '멜리즈'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A. 저희가 여러 개의 앱을 운영하는 전략으로 가고 있고요. 멜리즈도 그중 하나입니다. 한국 패션, 스타일 시장 규모가 큰데 뭔가 하나의 앱으로 모든 영역을 다 포괄해 가는 전략을 펴면서 동시에 분야별로 하나씩 공략해 나가는 게 저희의 전략입니다.



Q. 일본에서 에이블리와 비슷한 '아무드'란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잘되고 있나요?
A. 파스텔이란 이름으로 2020년 말 일본에 진출했고, 작년 11월에 이름을 아무드로 바꿨습니다. '어 무드'의 일본식 발음이고요. 한국 셀러들의 일본 진출을 돕고 있습니다. 일본 여성들이 한국 제품을 매우 좋아하시고요. 단순히 마니아층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한국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습니다.

Q. 왓챠 공동 창업자이셨는데 패션으로 눈을 돌린 계기가 있을까요.
A. 제가 왓챠에 있을 때는 OTT보다는 영화 추천, 평가에 집중했던 서비스였습니다. 잘 보면 에이블리와 왓챠의 구조가 동일해요. 왓챠는 수많은 콘텐츠 중에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찾아주는 거죠. 에이블리는 수많은 상품 중에 좋아할 만한 상품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입니다. 본질이 동일하기 때문에 플랫폼을 만들고 성장시키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Q. 한 인터뷰에서 이젠 어느 나라 사람이 아니라, 어느 회사에 다닌다는 것으로 정체성이 드러날 것이란 말씀을 하셨는데요.
A. 저는 국가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플랫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국가에 있는 어떤 경제 구조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와서 이용하고 또 성장하고 다시 구조를 만들어요. 앞으로 기업이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구성되면서 그 기업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방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될 것 같거든요. 그러면 내가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고 어떤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 국적보다 더 그 사람을 잘 대변할 수 있는 어떤 삶의 지표가 될 것 같고 그런 식으로 소통해 나갈 것 같아요.



Q. 그런 의미에서 에이블리는 어떤 철학이 있을까요?
A. 저희는 원팀(One Team), 그릿(GRIT), 임팩트(Impact) 이 세 가지를 추구합니다. 원팀은 한 스타 플레이어가 아니라 팀으로 똘똘 뭉쳐 일한다는 의미입니다. 회의에서도 상대방을 이기는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문제를 이기는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하죠. 그릿은 엄청나게 몰입해 일해야 된다는 것이고요. 그만큼 보상도 확실히 하려고 합니다. 임팩트는 핵심을 파고든다는 것이죠. '말이 아닌 실제로 뭘 하자는 건가, 그걸 하면 10배 성장할 수 있다' 이런 걸 추구합니다.

Q. 전자상거래 시장이 앞으로도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십니까.
A.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쿠팡이 연 거래액 20조~30조원 하거든요. 그런데 전체 점유율이 10%도 안 돼요. e커머스에서 또 하나 중요한 건 한국의 e커머스 보급률이 전 세계 최상위권인데도 50%가 안 돼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거죠. 저희 에이블리의 꿈은 쿠팡과 어깨를 겨루는 그런 빅 플레이어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K스타일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있어 더 좋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한국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1등을 해야 하고, 대만에서도 1등을 해야 하죠.

Q. 5년, 10년 뒤의 에이블리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A. 저는 누구나 에이블리에서 셀러를 하는 게 목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걸 먼저 이룬 플랫폼이 두 개가 있어요. 하나는 앱스토어고, 하나는 유튜브인데요. 지금 초등학생 장래 희망 1위가 유튜버잖아요. 저는 앞으로 초등학생 희망 1위가 에이블리 셀러가 됐으면 좋겠어요. 모든 사람들이 에이블리에서 뭔가를 판매하거나 팬을 만드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고, 저희는 이걸 '넥스트 커머스'라고 불러요. 넥스트 서비스 생태계가 앱스토어고, 넥스트 콘텐츠 생태계가 유튜브인 거처럼요. 특정 브랜드에 의해 독점되는 커머스 생태계가 아니라 세상에 없던 상품이 막 튀어나오고, 이걸 주체적 취향을 갖고 소비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습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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