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정확하게 알고 미래를 준비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열린 '포니의 시간' 전시회에서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현대차의 헤리티지 전략은 정 회장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업력이 어느새 50년을 넘어선 현대차가 전동화 시대를 맞아 새로운 브랜드 정체성을 되찾고 새로운 도약에 나선다는 취지다.
포니는 현대차가 1973년 고유 모델을 생산하겠다고 선언한 후 불과 3년 만에 나왔다. 현대차가 고유 모델을 개발한다고 하자, 당시 신진자동차와 GM(제너럴 모터스)의 합작사인 GMK(지엠 코리아) 벤지 부사장이 "현대자동차가 고유 모델을 개발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현대차는 이같은 회의적 시각에도 미쓰비시로부터 기술 제휴를 받아 엔진 등을 개발했다. 또 폭스바겐 골프를 디자인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에게 의뢰해 디자인을 설계했다. 기술 제휴로는 채워지지 않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당시 영국 최고 완성차 회사였던 영국의 브리티시 레일랜드 경영진 조지 턴불을 부사장으로 영입해 기술 개발에 힘썼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차가 '포니'다. 포니는 현대차뿐 아니라 자동차가 흔하지 않던 시절 국가적으로도 자동차 산업의 큰 틀에서 의미 있는 기록을 썼다. 포니 출시로 우리나라는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독일 일본 스웨덴 체코에 이어 9번째 고유 모델 출시 국가가 됐다. 국내 최초로 누적 30만대 생산을 돌파, 60개국에 수출되며 경제에도 힘을 보탰다.
작지만 잘 달리는 조랑말이란 뜻을 가진 '포니'란 차 이름은 어떻게 정해졌을까. 현대차는 승용차 한 대를 부상으로 내걸고 약 5주간의 신문 광고를 통해 국민 공모전을 진행했다. 당시 '아리랑'이란 이름이 가장 많이 응모됐는데,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는 노래 가사가 차 고장이 연상된다고 해서 채택되지 않았다고 한다.
정 회장은 지난달 이탈리아에서 열린 '현대 리유니온' 행사에서 "(현대차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과거를 정리하고 알면서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야 방향성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옛날에 힘들게 같이 노력했던 점, 그런 모든 것들을 다시 살리자는 취지"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포니의 과거를 되짚어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전기차 '아이오닉5'의 각진 그릴과 헤드램프 등은 포니를 오마주했고, 우수한 디자인으로 극찬받은 수소 하이브리드 롤링랩카 'N비전74'는 포니 디자인을 계승했다. 기아도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배우 송강호가 몰던 택시로 유명한 '브리사'를 복원하는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부는 뉴트로 열풍과도 맞아떨어졌다. '포니'를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 N비전74의 디자인에 열광하는 현상이 대표적 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헤리티지를 내세울 만큼의 업력을 쌓았다고 평가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포니 하면 아빠가 탔던 차, 할아버지가 탔던 차라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의 역사가 쌓인 것이 현대차의 헤리티지 전략에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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