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교육 개혁은 그동안 백약이 무효했다. 사교육의 정점인 대학입시가 바뀌지 않는 한 어떤 정책도 소용이 없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사교육의 영향력은 교육 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저출산, 노후 빈곤 등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의 ‘카르텔’ 발언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바꾸지 않으면 사교육, 나아가 국가적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진단에서 교육부에 변화를 요구했다는 분석이다.
교육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대통령의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수능은 교육과정 안에서 출제하고, 학교에서 교육받으면 충분히 대비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르면 다음주 사교육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한 자녀 가정의 증가는 사교육의 진화를 낳았다. 과거에는 한 아이가 한 종류의 학원에 다녔지만 이젠 동일 과목을 두고 여러 단계 사교육 학습과정을 거친다. 수학만 해도 정규반 심화반 문제풀이반 등으로 난도를 나눠서 세 배의 교육비를 쓰게 하는 식이다.
사교육 시작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초등학생 딸과 여섯 살 아들을 키우는 40대 직장인 B씨는 아이들 교육비로 한 달에 400만원을 쓴다. 딸은 사립초교(100만원)와 영어(25만원)·수학(25만원) 학원에 다닌다. 둘째는 영어유치원비(150만원)와 도우미 비용(100만원)이 들어간다. 맞벌이 부부 중 한 사람 월급이 고스란히 아이들 교육비에 투입되는 상황이다.
그는 앞으로가 더 막막하다고 했다. B씨는 “중학교까지 수능 준비를 끝내야 고교에서 스펙을 쌓아 대입 수시전형에 도전할 수 있다고 한다”며 “교육비는 늘어만 갈 텐데 10년 넘게 지금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갑갑하다”고 하소연했다.
사교육 방치는 결과적으로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사교육비 부담이 국가경쟁력 저하를 넘어 국가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며 “저출산으로 소멸 위기 국가에 진입하는 상황을 부채질하는 게 사교육”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자녀 교육비 지출로 빈곤하게 사는 ‘에듀푸어’가 ‘실버푸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자녀 1인당 사교육비 예상액은 7142만원(2021년 기준)에 달한다. 대학 학자금과 초교 입학 전 들어가는 양육비는 포함하지 않고, 전국 평균 사교육비를 기초로 계산한 수치다. 서울이나 대도시 학부모는 이보다 최소 200만원 이상 더 부담할 것으로 추정된다. 강은영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연구위원은 “노후를 대비해야 할 40·50대가 가장 많은 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강영연/이혜인/허세민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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