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해상 유전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기존 육상 유전이 노후화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해외 원유 수입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자 '에너지 주권'을 위해 심해 시추를 대폭 늘리고 있다.
이는 남중국해 등의 영유권을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을 더욱 키우고 있다. 미국 정부는 대(對)중국 견제의 일환으로 중국의 해상 유전 개발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기도 했다. 일각에선 중국의 심해 시추 '올인' 움직임이 7광구(JDZ·한일공동개발구역)까지 손을 뻗치게 만들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건 중국의 3개 국영 석유기업 중 하나인 해양석유총공사(CNOOC)다. CNOOC은 한반도 서해와 가까운 보하이해(渤海)에서 유전을 개발·운영하고 있다. 보하이 유전은 지난해까지 누적 생산량이 5억t에 달하는 중국 최대 유전이다. 최근엔 남중국해의 류화(流花) 유전을 확장하고 있다. 국내외 투자를 늘리고 있는 CNOOC의 원유 총생산량에서 중국 해상 유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15%에서 2021년 23%까지 늘었다.
CNOOC은 "2025년까지 중국 해상에서 추출된 원유의 비중을 12%포인트 더 늘리겠다"며 국내 해상 유전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S&P 글로벌 커머디티 인사이트의 바이후이 유 수석 리서치 애널리스트는 "중국 연안의 미개발된 원유 매장량이 상당하다"며 "국내 해상 원유는 향후 10년간 중국 경제가 성장하는 데 필수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후이 유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기술 발전과 접근성 향상으로 더 깊은 해역에 더 많은 시추를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심해 시추는 고도의 첨단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다. 재킷이라 불리는 철제 구조물을 수심 300m보다 깊은 해저에 고정시켜야 하는데, 해저의 엄청난 압력과 낮은 온도, 거센 파도와 태풍 등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1947년 멕시코만 연안에 세계 최초로 해저 유전 개발에 나선 미국(당시 수심 4~5m 수준)을 비롯해 유럽의 대기업들은 이미 1970년대에 북해 유전 개발에 뛰어들었다. 역사가 오래된 이들 서구권 기업들의 앞선 기술력을 최근 CNOOC이 급속도로 따라잡고 있다. 지난해 남중국해 주장커우(珠江口) 유전에 자체 설계·건설한 '하이지 1호' 재킷은 아시아 사상 최대 규모(총길이는 340m 가량)로 주목을 받았다. CNOOC은 미국 에너지 대기업 엑슨모빌이 가이아나 연안에서 발견한 유전 개발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등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중국의 심해 시추 확장은 또 다른 지정학적 갈등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중국은 이미 남중국해의 각종 유전을 개발·운영하는 과정에서 인도나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과 잦은 충돌을 빚어왔다. 중국이 국제법상 근거가 없는 남해9단선(南海九段線)을 설정해 남중국해에서 90%의 해역에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는 2020년 말 "CNOOC이 중국 인민해방군과 협력해 미국 동맹국들의 해양 자원 탐사를 방해하고 있다"며 규제 대상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중국은 동중국해에서도 춘샤오(白樺) 천연가스전 등을 단독 개발하며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벌였다. 2008년 양국은 중일대륙붕공동개발구역을 설정하고 공동 탐사를 합의해 분쟁을 일단락했다. 문제는 이곳이 한일대륙붕공동개발구역(JDZ), 이른바 7광구와 가깝다는 데 있다. 1974년 한국과 일본이 7광구 공동 탐사를 위해 맺은 이 협정은 2028년 종료된다.
일본 정부는 1982년 유엔국제해양법 상 배타적경제수역(EEZ)가 정식 도입되자 단독 개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국 정부와의 협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자국 연안으로부터 200해리(약 370km)까지의 모든 자원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EEZ 도입으로 7광구 일대 대부분이 일본 영유권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애초에 한일간 7광구 협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7광구 협정이 만료된 뒤 7광구 일대가 한·중·일 다자간 외교 분쟁으로 비화되는 화약고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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