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자동차의 두뇌 역할을 하는 ‘차량용 반도체’가 급부상하고 있다.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등의 기능을 탑재한 미래차가 ‘바퀴 달린 스마트폰’ ‘바퀴 달린 컴퓨터’로 진화하는 것과 맞물린다. 미래차는 어떤 반도체를 장착하느냐에 따라 성능과 매력, 특징이 결정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물론 퀄컴, 인텔, 르네사스 등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을 잡기 위해 격전을 벌일 전망이다.
그동안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돈이 되지 않는 시장”으로 통했다. 차 한 대에 200~300개가 들어가는 반도체의 대다수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으로 전자장치를 단순 제어하는 역할만 했다. 사양이 낮은 제품인 만큼 가격도 1달러 안팎에 불과했다.
테슬라를 비롯한 자동차업체들이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등의 기능을 강화하면서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폭발했다. 종전 내연기관 자동차 한 대에 장착되는 반도체가 300개라면 레벨3(조건부 자율주행) 이상 자율주행차에는 약 2000개의 반도체가 들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수요가 폭발하면서 2021~2022년 차량용 반도체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완성차업체 일부는 생산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GM, 포드, 다임러, BMW 등 세계 완성차업체들이 반도체 칩을 구하지 못해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완성차업체와 차부품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 조달을 위한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는 소프트웨어와 자동차, 자동차와 다른 자동차 사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연결하는 기능이 필수다. 연결 속도와 데이터 전송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도 뒷받침해야 한다.
자율주행차는 V2X 등을 활용해 약 200m 거리에 있는 사람, 사물, 도로, 건물을 확인해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이 정보를 교통 시스템에 전달해 새 정보를 받아와야 한다. 도로 상황은 실시간으로 변한다. 이 같은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품질 차량용 반도체가 필요하다.
IHS에 따르면 2040년 자율주행차 수요는 3370만 대에 달할 전망이다. 그만큼 자율주행차가 보편화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차량용 반도체 수요도 폭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차의 보안을 강화하기 위한 반도체의 역할도 커질 전망이다. 각종 소프트웨어가 깔린 미래차는 해킹의 위험도 커진다. 미래차 해킹을 막기 위한 사이버 보안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보안을 강화해달라는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반도체 개발도 이어지고 있다.
진화하는 차량용 반도체는 일반 사용자는 물론 자동차 전장·부품·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도 상당한 편의를 제공할 전망이다. 차량용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에서 고사양 차량용 반도체를 사용하면 고성능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다. 차량용 반도체는 주문에서 납품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린다. 안전성, 완성도, 시설 투자, 설계 능력 등 여러 역량이 요구된다. 진입 장벽이 높은 산업이다.
LG전자는 지난달 캐나다 인공지능(AI) 칩 개발 스타트업 텐스토렌트와 손잡고 차량용 반도체 등을 개발한다고 밝혔다. 텐스토렌트는 2016년 출범한 업체로 AI용 컴퓨터를 개발하고 있다. LG전자는 이번 협업으로 차량용 반도체 개발 과정에서 텐스토렌트의 AI 기술을 활용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도 차량용 반도체를 새 먹거리 사업으로 점찍고 대대적 투자를 하고 있다. 이 회사 시스템LSI사업부는 차량용 시스템 반도체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면서 성능과 안정성을 입증받았다. 시스템LSI사업부의 차량용 반도체 고객은 현대자동차 아우디 폭스바겐 등이 있다.
삼성전자는 자동차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중심으로 개발에 나섰다. 독자적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객사도 늘려가고 있다. 최근에는 현대자동차에 납품하는 등 고객층도 넓어지고 있다.
이들 반도체는 차량 인포테인먼트용 AP로, 자동차의 실시간 운행 정보는 물론 차 안에서 즐길 수 있는 고화질 영상과 게임 등을 처리한다. 자동차에서 음성으로 음악을 틀거나 전화를 걸고, 실시간 운행 정보를 운전자에게 제공하는 것 등이 AP 역할이다.
차량 인포테인먼트 시장은 자율주행 기술 발전과 함께 급성장하고 있다. 차 안에서도 다양한 영상 콘텐츠와 게임을 즐기려는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런 수요에 맞춰 자동차에도 고용량 영상과 게임을 구동할 수 있는 높은 성능의 AP가 들어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7일 현대차 차량에 ‘엑시노스 오토(Exynos Auto) V920’을 공급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2021년 현대차 제네시스에 이미지센서 등을 공급한 바 있다. 2025년 공급이 목표다. 이미지센서는 카메라의 눈 역할을 하는 고성능 반도체다. 하지만 AP를 현대차에 공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엑시노스 오토 V920은 반도체 업체인 ARM의 전장용 중앙처리장치(CPU) 10개가 탑재돼 중앙처리장치(CPU) 성능이 이전 세대 대비 1.7배 향상됐다. 인공지능(AI) 연산을 고속으로 처리하게 돕는 신경망처리장치(NPU) 성능도 2.7배 개선됐다. 운전자 음성을 인식하고 상태를 감지하는 운전자 모니터링 기능과 주변을 신속히 파악해 안전한 주행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엑시노스 오토 V920에 들어간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이전 세대와 견줘 최대 2배 빨라진 그래픽 처리 성능을 갖췄다. 고성능·저전력 메모리 반도체인 LPDDR5를 지원해 최대 6개 고화질 디스플레이와 12개 카메라 센서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차량용 시스템 안전 기준 ‘에이실-B’도 지원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사업부는 미국 인텔의 자율주행 부문 자회사 모빌아이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칩 생산도 수주했다. 파운드리는 주문받아 칩을 생산하는 사업이다. 삼성전자는 ‘자율주행차의 두뇌’ 역할을 하는 모빌아이의 주력 제품 ‘EyeQ’ 모델 중 5시리즈 이하 일부 물량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매년 수조원을 투자하는 데 이어 인력도 확충하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삼성오스틴연구센터(SARC)와 캘리포니아주 어드밴스드컴퓨팅랩(ACL) 책임자(부사장)로 베니 카티비안 전 퀄컴 엔지니어링 부문 부사장을 임명하기도 했다. 카티비안 부사장은 자율주행차 반도체 개발 전문가로 퀄컴에서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을 비롯한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을 주도했다. 최근엔 반도체(DS) 부문에 전기차에 많이 쓰이는 전력반도체를 담당하는 태스크포스(TF)도 신설했다.
김익환 기자/도움말=LG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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