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언제든 물러나라면 나가야 하는 전문 경영인(CEO) 입니다”. 김슬아 컬리 대표가 임직원들 앞에서 종종 하는 말이다.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각오다. 김 대표는 마켓컬리 창업자임에도 그가 가진 컬리 지분율은 6.25%(작년 말 기준)에 불과하다.
우호 지분을 확보할 겨를도 없이 숨 가쁘게 투자를 유치하고, 이를 통해 사업을 계속 확장하면서 김 대표는 ‘창업의 몫’을 스스로 포기했다. 최악의 경우 ‘컬리=김슬아’라는 공식이 시효를 다했다는 판단이 들면, 외국계 투자자들로 구성된 이사회는 언제든 김 대표를 사내 이사이자 CEO 자리에서 내려가라고 할 수 있다.
존속 회사로서 컬리가 얻은 것도 상당하다. ‘퍼플(보라색)’로 상징되는 컬리만의 브랜드는 수조 원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기업 공개할 경우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공모가만 해도 2조원을 웃돈다.
‘컬리 온리’ 상품도 컬리만의 경쟁력이다. 유명 맛집의 HMR(가정 간편식)을 비롯해 CJ제일제당 같은 대형 식품 회사와의 협업을 통해 컬리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상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이마트 등 유통업체들이 자체 상표(PB)를 강화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상장을 철회하면서 컬리는 다시 한번 유상 증자를 실시했다. 운영 자금의 용도로 1199억원을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조달했다. 이는 상장 시점이 임박했음을 의미한다는 게 투자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단숨에 적자 구조를 바꾸기 어려운 상황에서 컬리가 상장을 위해 당장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하나뿐이다. 컬리만이 가진 차별화되고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확장성을 증명하는 길이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컬리 회원들이 한번 물건을 구매할 때 좀 더 비싼 상품을 고르도록, 다시 말해 장바구니의 총액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만 컬리는 흑자로 전환할 수 있다”라며 “컬리만의 상품 기획력으로 만든 컬리 온리 상품이 장바구니 규모를 늘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컬리는 이번 행사의 취지에 대해 “컬리 고객이 사랑해 온 브랜드들을 좀 더 많은 고객이 경험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이와 함께 “푸드 트렌드에 더해 식재료를 깊이 알아가는 즐거움까지 얻을 수 있는 컬리 푸드 페스타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 ‘카페 사장님’들의 필참 코스로 자리 잡은 ‘카페 쇼’처럼 컬리 푸드 페스타를 전국구 ‘푸드 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홀로 독자 생존을 해야 하는 컬리만이 기획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발상이다.
계열사들의 힘을 결집해 신세계 유니버스라는 파격적인 통합 멤버십 프로그램을 만든 신세계그룹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고객을 묶어둘 수 있는 락인(lock-in) 전략은 이커머스의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건이다. 컬리가 온라인 밖으로 나가기로 한 이유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컬리에만 상품을 공급하던 전국구 맛집 중에서 일부가 최근 탈퇴를 선언한 것으로 안다”며 “컬리로선 이 같은 이탈을 막기 위해서라도 온라인 외에 오프라인으로도 판로가 있다는 점을 협력사에 각인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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