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8세.
2022년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국내 임금근로자의 평균연령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직장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평균 나이가 44세라는 얘기다. 전체 산업 평균이라고 하나, 대표 산업인 제조업만 놓고 보더라도 43.5세로 큰 차이가 없다. 언뜻 보기에 많은 나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전체 평균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숫자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보다 산업화가 먼저 진행된 일본이나 미국과 비교해 보면 과연 어떨까. 제조업 기준으로 보면 일본은 43.1세, 미국은 44.2세이다. 일본은 추월했고, 미국보다는 조금 낮은 수준이다.
그렇다면 증가세는 어떨까. 2011년 이후 약 10년간 우리나라는 평균 4.3세 증가했고, 같은 기간 일본은 1.5세, 미국은 0.1세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증가세가 상대적으로 빠르다. 지금 흐름대로면 2025년에는 미국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엔 급속한 고령화가 가져다 줄 앞으로의 미래가 편안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정 수준 자연히 증가하는 임금인상 구조(호봉제)나 노동법상 보장하고 있는 고용의 경직성 등이 기업 입장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 환경에서 각 기업들은 어떻게 고령화에 대응해야 할까.
먼저 가까운 일본의 경우,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이슈를 경험하고 있다. 일본이 접근하고 있는 방식은 우선 ‘정년 연장’이다. 2021년 4월부터 기업들에게 만 70세까지 정년을 연장하는 ‘노력 의무’를 결정했다. 법정 정년은 65세이지만, 70세까지 연장을 강력히 권고하는 제도다. 이에 많은 일본 기업들은 70세까지 정년을 연장했고, 가전 유통 상장사 노지마는 기존 65세에서 80세로 15년씩이나 정년을 연장했다. 일본은 이와 같은 정년 연장을 통해 노동인구 감소에 대응하고, 연금이나 의료비 지원 등 국가의 지출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한편, 많은 일본 기업들은 이러한 정년 연장과 함께 ‘잡(Job)형 고용’이라 불리는 직무 중심 인사의 개념을 도입하는 특징을 보인다. 오랜 기간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신입사원 일괄채용(공채),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관리, 고용보장 등의 형태로 운영해 왔다. 이러한 고용의 형태를 일본에서는 ‘멤버십(Membership)’ 고용이라고 불러 왔는데, 이제는 점차 잡(Job)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잡형’ 고용은 미국이나 유럽의 많은 기업들처럼 각 직무 별 속성을 정의하고, 업무 범위도 명확하게 한정해서 그 직무에 맞는 임금을 지급하는 전형적인 직무급 개념이다. 또한 일본의 대표적인 음료 기업인 산토리의 경우 ‘직능자격제도’와 ‘자격/역할제도’를 인사관리의 근간으로 개편하면서 직무수행능력과 실제 역할에 따라 보상을 차별화했고, 성공적으로 전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여러 국가들은 1980년대부터 고령화를 대비해서 정년제 개편을 검토해 왔고, 오래 전 이미 정년제도를 폐지했다. 이는 영미식의 유연한 노동시장 제도로 인해 어렵지 않게 정착할 수 있었다. 흔히 ‘임의고용원칙’이라고 하는 고용유연화 정책이 각 기업들로 하여금 고령화에 대한 큰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금은 연령을 떠나서 ‘일할 사람’ 자체가 부족한 것이 해당 국가들의 고민이다. 주로 파트타임을 활용해서 고령 인력을 필요에 따라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방식이었는데, 최근에는 인력수급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최근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65세 이상 고령자들이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을 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를 경험한 국가들의 대응 방식을 보면, 기본적으로 일할 수 있는 나이 제한은 폐지하거나 연장하되, 담당하고 있는 일에 따라, 그리고 실제 수행 능력에 따라 임금을 차별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법률과 노동환경이 다르고, 오랜 기간 관행처럼 유지되어 온 고용과 보상의 방식, 노동조합과의 협상 등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다른 나라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제한요인들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먼저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재교육(Re-Skilling)이다. 지금까지는 실무자로 일하다 일정 시점이 되면 관리자로 역할이 전환되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제는 A실무자에서 B실무자로 전환되거나, A실무자에서 A+C실무자로 멀티스킬링이 되는 방식으로 트랙을 전환 또는 확장하며, 실무자로서 역할을 지속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히 ‘관리자’로 성장하는 것에서 벗어나, 고연령 직원들에게도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영업 활동이나 사업에 필요한 대외 네트워킹 등 그간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조직 밖에서 새로운 사업을 만들고 리딩하는 역할을 부여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내부 구성원들에게 지식을 전수하고,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지식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적극 부여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겠다. 고령화 시대에는 기존의 일반적인 트랙에 더해서 산업전문가, 글로벌전문가, 조직리더(제너럴리스트), 현장전문가, 고객/네트워크 전문가 등 영역을 다양화하여 구성원이 지속가능성을 가지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령 직원이 계속적으로 실무자로서 일할 수 있으려면, 이들을 위한 별도의 조직을 구성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우리나라 특유의 선후배, 연차서열 문화 등을 고려할 때, 직급/연차가 골고루 배치된 조직은 오히려 비효율을 낳을 수 있다. 고연령의 선배는 팀 안에서 관리/감독자 역할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결국 후배 직원들만 실무자로서 부담을 짊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조직을 구성할 때에도 무조건적으로 직급/연차를 고르게 구성하기 보다는, 고직급/고연령 구성원만을 위한 별도 조직을 꾸리는 것을 고민해볼 수 있다. 리스킬 과정을 완료한 고연령 구성원들을 따로 모아 그들끼리 협업하며 특정 과제를 수행하고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좋은 대안일 수 있다.
이러한 성장경로, 역할경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보상과의 연계도 필수적이다. 고령화는 곧 기업 입장에서 생산성 문제이다. 각 트랙별로 직무급 개념을 도입해 보상수준을 달리 적용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내 기업 정서상 즉각적 전환이 어렵다고 하면 일정 연차까지는 직무나 역할에 관계 없이 역량에 따른 차별화만 적용하다가, 일정 직급(연차) 이상이 되면 그때부터는 담당하고 있는 직무나 역할에 따라 보상을 차별화하는 방식도 고민해 볼 수 있다. 또한 구성원들의 재교육과 육성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도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주로 지금 담당하고 있는 직무에 대한 교육, 그리고 고용안정을 위한 복지 등에 많은 투자를 했다면 앞으로는 새롭게 담당해야 할 역할을 위한 교육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결국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면서도, 성장에 대한 동기부여도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성취와 합당한 보상도 제공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가 찾아가야 할 적합한 고령화 대응 전략이 아닐까. 고령화가 된다고 해서 서서히 침체되고 가라앉기보다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회사와 구성원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조영준 MERCER Korea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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