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광 조지아대 석좌교수 "세계인 널리 쓸 신약 하나 남기는 데 여생 바치겠다"

입력 2023-06-20 17:52   수정 2023-06-21 00:19

“팔십 평생 하고 싶은 연구는 할 만큼 했습니다. 이제 남은 꿈은 세계에 널리 쓰이는 신약 하나를 만들어보는 겁니다.”

항바이러스 신약 개발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히는 주중광 미국 조지아대 약대 교수(82·사진)는 20일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지난 14일 제16회 세계한인의 날 국민훈장 목련장 수상자로 선정된 그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받는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남은 일생을 매진하겠다고 했다.

외교부는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재외동포의 민족적 의의를 되새기기 위해 세계한인의 날을 제정하고 한국인의 위상을 높인 동포에게 훈장 등을 수여하고 있다. 주 교수는 1998년 창업한 바이오기업 파마셋에서 B형 간염 치료제인 ‘레보비르(성분명 클레부딘)’를 개발해 인류 건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1941년생인 그는 경복고, 서울대 약대를 졸업한 뒤 조지아대 약학과에서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1964년 해군장교로 병역을 마치고 미국 유학을 떠나 애틀랜타주에 자리잡았다. 1979년 미국에 귀화했지만 6·25 참전용사 직계후손 장학금과 모교인 서울대 등에 장학금을 꾸준히 지원해 지역 한인 사회에서 ‘기부왕’으로 통한다.

주 교수는 팔십 평생 바이러스 치료제 연구에 매진한 삶이 ‘롤러코스터’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과거에도, 지금도 연구는 늘 필요할 때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다”며 “어제 잘 되던 연구가 갑자기 오늘은 되지 않을 때 좌절도 맛봤지만 돌아보니 연구의 성정 자체가 그렇더라”고 말했다.

그가 개발한 레보비르는 2006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아 국내에서 판매됐다. 유럽 일부 국가에도 진출했다. 한때 연간 200억원어치 이상 팔린 인기 의약품이었다. 하지만 끝내 ‘그의 꿈’이던 FDA 문턱은 넘지 못했다. 레보비르를 개발하던 주 교수의 창업회사 파마셋이 대형 제약사에 인수되며 미국 내 임상연구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FDA 승인 꿈을 이루기 위해 주 교수는 국내 바이오업체 안트로젠과 손을 잡았다. 그는 “레보비르를 기술이전해 한국에서 개발할 때 이성구 안트로젠 대표(당시 부광약품 대표)와 손발을 맞췄는데, 요새 말로 ‘케미’가 너무 좋았다”며 “그때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안트로젠과 대상포진 신약을 개발하게 됐다”고 했다. 내년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기존 약보다 인체 흡수율이 높아 더 적은 양으로도 효능이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바이러스가 뇌에 침투해 일으키는 뇌염에도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안트로젠과 함께 바이러스의 유전자(DNA)를 망가뜨려 증식을 막는 ‘뉴클레오시드 유사체’를 활용해 대상포진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앞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 코로나19 치료제 ‘몰누피라비르’ 등도 이런 방식으로 개발됐다. 주 교수는 “신약 개발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널리 쓰이는 시대가 됐지만 뉴클레오시드 유사체를 이용한 항바이러스 의약품 개발은 결과 예측이 어려워 아직 컴퓨터가 따라잡지 못한 인간의 영역”이라며 “경험을 기반으로 한 직관으로 신약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이우상 기자/사진=최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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