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북한 소행임을 안 믿고 싶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북한이 그럴 리가 없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을 담고 있으면 아무리 명백한 증거가 나와도 수긍하기가 어렵다. 인지부조화이론을 처음 제시한 미국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에 따르면 상반되는 두 인지 요소의 불일치는 심리적 불편을 초래한다. 따라서 이를 줄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확실한 증거가 나왔을 때도 그 믿음을 폐기하는 대신 증거를 부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렇게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것이 확증편향이다.
아무리 구체적, 과학적 증거라도 이런 사람들에게는 별무소용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의 입시 비리 증거가 차고 넘쳐도 지지자들은 여전히 열광한다. <조국흑서>(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못지않게 <조국백서>(검찰개혁과 촛불시민)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조 전 장관의 북콘서트도 성황이다. 내년 총선 출마설까지 나돈다. 그의 딸은 부모가 실형을 선고받았고 자신도 곧 기소될 처지인데 구독자 20만 명을 눈앞에 둔 인기 유튜버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어떤가. 선체 불법 증축, 부실한 화물 고정, 감독 소홀 등 세월호 침몰 원인은 이미 9개 국가기관의 아홉 차례에 걸친 수사·감사·조사를 통해 일찌감치 규명됐다. 그런데도 잠수함 충돌설, AIS 항적 조작설, 국가정보원 연루설 등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다. 아직도 세월호 사고 원인에 대해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도, 과학적 근거도 믿지 못하겠다는 인지부조화가 또다시 횡행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안전성에 관해서다. 일본이 원전 오염수를 다핵종 제거설비(ALPS)로 처리한 뒤 바다에 방류할 경우 안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대다수 과학자와 전문가의 견해다. 한국원자력학회가 20일 발표한 입장문을 보면 그 이유는 차고 넘친다. 2011년 원전 사고 당시 많은 양의 고농도 방사성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방출됐으나 해류의 방향, 광대한 태평양의 희석 효과로 지난 12년 동안 한국 해역에서는 유의미한 방사능 증가가 관측되지 않았다. 오염수 중 삼중수소 농도를 L당 1500Bq(베크렐)로 희석해 방출하면 수십㎞ 밖에서는 영향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또 10년 후 우리 해역에는 L당 0.000001Bq 정도의 농도 증가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돼 한국 바닷물의 삼중수소 농도(0.1~0.2 Bq/L)에 비하면 미미한 양이라는 게 학회의 설명이다.
수많은 전문가들의 거듭된 설명에도 야당은 귀를 닫고 괴담성 공포 조장에 바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여당이 돌팔이 과학자를 불러 발표하는 게 괴담을 퍼뜨리는 것”이라며 급기야 오염수를 ‘핵폐수’라고 부르고 있다. 장외집회까지 잇달아 열며 비난의 화살을 일본이 아니라 우리 정부에 돌리고 있지만,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건 보지 못했다. 한국 전문가도 포함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 결과도 못 믿겠다는 태도다.
과학을 외면하고 공포를 조장한 결과는 천일염·미역·다시마 사재기요, 수요 급감을 걱정하는 수산업계와 요식업계의 절규다. 무엇을 위해 공포를 조장하는가. 인지부조화의 늪에서 헤어나려면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게 아니라면 휘발성 높은 소재인 식품 안전에 관한 국민 불안과 반일감정을 이용한 총선용 정략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떳떳하다면 원자력학회가 제안한 공개토론에 응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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