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의 제왕’인 구글이 챗 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 전쟁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에 승기를 뺏긴 건 무엇 때문일까. 구글의 안이함, MS의 절치부심이 주요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설(說)도 있다.
AI가 세상의 온갖 질문에 단번에 ‘정답’을 얘기한다면, ‘구글링’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검색 페이지에 최대한 오래 머물게 해야만 광고 사업이 존속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구글로선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구글의 딜레마’는 곧 ‘네이버의 딜레마’다. 네이버는 정보 검색을 넘어 상품 검색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진화시키고 있는 검색 포털이다. ‘최저가 비교’라는 도구를 활용해 네이버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최강자로 올라섰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온라인 상점을 개설한 중소 상공인들이 수백만 명에 달한다. 상품 검색을 통한 네이버의 이커머스 장악력은 엄청나다. G마켓, 11번가, SSG닷컴, 롯데온 같은 굴지의 이커머스 업체들은 네이버라는 황제에 속한 봉건 영주에 불과하다. 네이버에서 검색한 상품을 클릭하면 G마켓 ‘셀러’에 연결되는 구조에서 네이버는 영원한 ‘갑’이다.
네이버가 실제로 돈을 버는 사업은 광고다. 네이버는 자릿세를 헐값으로 책정해서 시장에 상인들이 모이게 하고,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로 시장이 북적이면 자리 곳곳에 광고판을 내거는 방식으로 떼돈을 벌고 있다.
챗 GPT로 쇼핑도 가능해질 것이란 전망은 많다. ‘맛있는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AI는 상세한 레시피와 함께 재료까지 추천해줄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재료를 어디서, 어떻게 구매하면 소비자에게 가장 합리적인가라는 질문으로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예컨대 네이버의 AI에 ‘면역력 높이기 위한 건강기능식품 알려줘’라고 질문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질문자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사전 정보를 미리 제공하지 않는 한, AI의 답변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설혹 소비자의 건강 정보라는 입력값에 딱 들어맞게 상품을 추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만일의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상품 구매자가 해당 건기식을 먹고 부작용으로 질병이 발생했을 경우 AI를 운영하는 네이버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단순 검색을 통해 물건을 구매하는 경우와는 책임 소재 문제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가장 잘 팔리는 치약 추천해 줘”라는 질문은 건기식과는 정반대의 딜레마를 발생시킨다. AI는 쉽게 답을 할 수 있다. 데이터값이 충분해서다. 하지만 네이버는 이 같은 ‘정답’을 소비자에게 알려주는 순간, 난관에 봉착한다. 1위 자리에 오르기 위해 네이버 광고에 비용을 쏟아붓고 있는 2위, 3위 등등의 후발주자들은 더 이상 광고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챗 GPT가 가장 유용하게 쓰일 영역은 이커머스다. 내가 처한 모든 상황을 파악해서 품질 좋고, 가격 저렴한 상품을 고를 수 있도록 정확한 답변을 제공하는 AI가 있다면, 누군들 사용하지 않겠는가. 인공지능 스피커를 활용한 ‘리테일 테크’ 등이 이 같은 시도의 선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실패한 시도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AI가 인기 제품을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해 답을 해줄 수는 있지만, 이대로 소비가 이뤄지면 특정 브랜드 쏠림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 유통업체로선 1등 브랜드에 대한 종속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같은 문제를 피하려면 AI라는 블랙박스가 수요와 공급을 계산해 ‘적당한 답’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를 가능케 할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만일 가능하다고 한다면, AI가 시장 경제를 움직이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눈치챘을 것이다. 가정의 가정을 반복하며 논리가 비약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렵게 얘기했지만, 결론은 하나다. 이커머스에 챗 GPT를 적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구글, 아마존, 네이버, 쿠팡 등 이커머스 플랫폼이 원치 않기 때문이다.
쇼핑은 정답을 찾는 행위가 아니다. 백화점에 왜 창문이 없겠나. 창문 볼 겨를도 없이 고객의 시선과 욕망을 빼앗아 상품을 이것저것 고르도록 하는 것이 백화점이 추구하는 바다. 이커머스라고 해서, 이 같은 쇼핑의 본질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다. 구독이다. 내 온갖 정보를 제공하고, 매달 일정액을 내면 당신에게 맞는 답을 제공할 수 있다는 컨셉트로 접근한다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초거대 AI와 이커머스를 결합하는 자가 등장한다면, 그가 바로 ‘리테일의 제왕’이 될 것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만능 AI가 디지털 광고에 악영향 끼칠 수도"…구글의 딜레마
구글은 초거대 AI를 준비해 놓고도 세상에 내놓길 꺼렸을 것이란 추측이다. 이 가정에 따르면, 구글은 무언가에 망설였다. 핵심 사업인 디지털 광고에 AI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 확답을 못 얻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AI가 세상의 온갖 질문에 단번에 ‘정답’을 얘기한다면, ‘구글링’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검색 페이지에 최대한 오래 머물게 해야만 광고 사업이 존속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구글로선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구글의 딜레마’는 곧 ‘네이버의 딜레마’다. 네이버는 정보 검색을 넘어 상품 검색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진화시키고 있는 검색 포털이다. ‘최저가 비교’라는 도구를 활용해 네이버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최강자로 올라섰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온라인 상점을 개설한 중소 상공인들이 수백만 명에 달한다. 상품 검색을 통한 네이버의 이커머스 장악력은 엄청나다. G마켓, 11번가, SSG닷컴, 롯데온 같은 굴지의 이커머스 업체들은 네이버라는 황제에 속한 봉건 영주에 불과하다. 네이버에서 검색한 상품을 클릭하면 G마켓 ‘셀러’에 연결되는 구조에서 네이버는 영원한 ‘갑’이다.
네이버가 실제로 돈을 버는 사업은 광고다. 네이버는 자릿세를 헐값으로 책정해서 시장에 상인들이 모이게 하고,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로 시장이 북적이면 자리 곳곳에 광고판을 내거는 방식으로 떼돈을 벌고 있다.
네이버가 쿠팡 추격 막을 유일한 방법
네이버 역시 생성형 AI에 대한 기술력이란 측면에서 글로벌 상위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구글처럼 준비는 해놨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내놓을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21일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센터장은 네이버가 개발 중인 초거대 AI의 상용화 방안에 대해 “전문 분야에 특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커머스에 적용할 생각이 아직 없다는 얘기다.챗 GPT로 쇼핑도 가능해질 것이란 전망은 많다. ‘맛있는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AI는 상세한 레시피와 함께 재료까지 추천해줄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재료를 어디서, 어떻게 구매하면 소비자에게 가장 합리적인가라는 질문으로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예컨대 네이버의 AI에 ‘면역력 높이기 위한 건강기능식품 알려줘’라고 질문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질문자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사전 정보를 미리 제공하지 않는 한, AI의 답변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설혹 소비자의 건강 정보라는 입력값에 딱 들어맞게 상품을 추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만일의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상품 구매자가 해당 건기식을 먹고 부작용으로 질병이 발생했을 경우 AI를 운영하는 네이버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단순 검색을 통해 물건을 구매하는 경우와는 책임 소재 문제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가장 잘 팔리는 치약 추천해 줘”라는 질문은 건기식과는 정반대의 딜레마를 발생시킨다. AI는 쉽게 답을 할 수 있다. 데이터값이 충분해서다. 하지만 네이버는 이 같은 ‘정답’을 소비자에게 알려주는 순간, 난관에 봉착한다. 1위 자리에 오르기 위해 네이버 광고에 비용을 쏟아붓고 있는 2위, 3위 등등의 후발주자들은 더 이상 광고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챗 GPT가 가장 유용하게 쓰일 영역은 이커머스다. 내가 처한 모든 상황을 파악해서 품질 좋고, 가격 저렴한 상품을 고를 수 있도록 정확한 답변을 제공하는 AI가 있다면, 누군들 사용하지 않겠는가. 인공지능 스피커를 활용한 ‘리테일 테크’ 등이 이 같은 시도의 선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실패한 시도였지만 말이다.
"백화점에 창문이 없는 이유…‘쇼핑의 본질’과 챗GPT는 공존할 수 있을까
생성형 AI는 네이버 쇼핑 같은 셀러 마켓보다는 오히려 이마트나 쿠팡(쿠팡과 아마존은 직매입과 셀러 마켓을 병행한다)처럼 상품을 직매입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1P 유통업체에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광고에서 자유로운 데다 자기 물건을 추천하는 것이니 부담이 덜할 것이란 얘기다.하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AI가 인기 제품을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해 답을 해줄 수는 있지만, 이대로 소비가 이뤄지면 특정 브랜드 쏠림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 유통업체로선 1등 브랜드에 대한 종속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같은 문제를 피하려면 AI라는 블랙박스가 수요와 공급을 계산해 ‘적당한 답’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를 가능케 할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만일 가능하다고 한다면, AI가 시장 경제를 움직이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눈치챘을 것이다. 가정의 가정을 반복하며 논리가 비약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렵게 얘기했지만, 결론은 하나다. 이커머스에 챗 GPT를 적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구글, 아마존, 네이버, 쿠팡 등 이커머스 플랫폼이 원치 않기 때문이다.
쇼핑은 정답을 찾는 행위가 아니다. 백화점에 왜 창문이 없겠나. 창문 볼 겨를도 없이 고객의 시선과 욕망을 빼앗아 상품을 이것저것 고르도록 하는 것이 백화점이 추구하는 바다. 이커머스라고 해서, 이 같은 쇼핑의 본질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다. 구독이다. 내 온갖 정보를 제공하고, 매달 일정액을 내면 당신에게 맞는 답을 제공할 수 있다는 컨셉트로 접근한다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초거대 AI와 이커머스를 결합하는 자가 등장한다면, 그가 바로 ‘리테일의 제왕’이 될 것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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