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 수익성과 이용자 편의성 상충, 절충안 찾아야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과정은 단순하다. 누구든 한전으로부터 전기를 사와 전기차 이용자에게 되팔면 된다. 이때 충전기는 직접 만들 수도 있고 구매할 수도 있다. 방법이야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전력 소매를 벌어들이는 판매 수익이다. 따라서 사업자마다 충전기를 설치할 때 몇 가지 고려 사항이 있다.
먼저 장소 선정이다. 가급적 전기차가 많은 지역에 설치해야 전력 판매도 늘어날 수 있어서다. 둘째는 충전 속도의 결정이다. 주거 및 근무지에서 충전하는 사람이 많으면 완속을 선호한다. 사업 원가에 해당되는 충전기 가격이 저렴한 탓이다. 반면 운행 전기차가 많은 지역은 짧은 시간 충전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급속을 설치한다. 하지만 운행되는 전기차가 많아도 이용율은 떨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완속 대비 비싼 급속 충전기 구입 가격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그래서 정부가 충전기를 설치할 때 보조금을 일부 지급한다.
보조금을 충전기 설치에 지급하는 이유는 충전기 확대가 전기차 구매자의 충전 불안감을 낮추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번을 이용해도 찾기 쉬운 곳에 빠른 충전기가 많다면 배터리 전력 잔량은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전기차 구매를 꺼리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충전 인프라 부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충전 사업자는 바로 ‘어쩌다 한번’을 만족시키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만큼 주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정이나 사무실 같은 예측 가능한 지역을 우선 설치 장소로 삼는다. 출퇴근 이후에 일정한 전력 수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쉽게 보면 전력 구매자는 ‘어쩌다 한번’이 어렵지 않아야 전기차 접근성이 높아지는 반면 충전 사업자는 ‘어쩌다 한번’을 위해 선제적 투자가 어려운 상충 구조다.
그래서 제안되는 방법이 보조금의 분산 투입이다. 설치 때 부여하는 보조금은 절반으로 줄이되 나머지는 판매 전력량에 비례해 지급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충전 사업자는 임대료와 충전기가 비싸도 전력 판매가 많은 지역을 찾게 된다. 이른바 급속 충전기의 장소 선점 경쟁이 벌어져 전기차 구매자의 불안감을 낮추게 된다. 동시에 많은 전력을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에도 적극 돌입할 수밖에 없다.
보조금을 어디에 주느냐가 중요한 이유는 그만큼 충전 사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사실상 충전 사업은 불가능하다. 물론 자본이 넉넉한 사업자는 꿋꿋하게 인프라 구축에 나설 수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 보조금 없이 충전 사업을 하겠다는 곳은 별로 없다. 그래서 설치 보조금을 주는데 안정적 수요가 있는 곳만 공략하다 보니 한국은 급속 충전기 비율이 매우 낮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발간한 ‘2023년 글로벌 전기차 전망·충전 인프라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충전기 1대당 전기차 대수’(Charging Points per EV)는 2.0대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급속 충전 비중은 14%로 글로벌 평균 3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충전기 숫자보다 이제 충전의 질적인 부분에 신경 써야 한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충전 사업자가 돈을 버는 사업 형태는 에너지 유통이다. 정유사로부터 기름을 사서 주유소를 통해 되파는 구조와 같다. 그런데 기름과 다른 것은 전력 매입 가격이 모든 사업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기름은 많이 살수록 정유사가 할인을 해줄 수 있지만 전력은 많든 적든 동일 가격이다. 그런데 전기차 이용자에게 판매할 때는 사업자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설치 장소의 임대료, 충전기 가격 등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업자는 임대료를 적게 내고 이용자가 많을수록 수익이 높아진다. 그러나 현실에선 오가는 전기차가 많은 지역일수록 장소 임대료가 높고 이때 요금에는 사업자의 전략이 반영된다. 판매 전력이 많으면 가격을 내릴 수도 있지만 어쩌다 잠깐 들러 충전하는 이용자라면 비싸게 받으려 한다. 그래서 이제는 유통 전력량이 많은 곳에 보조금을 투입할 때가 됐다. 그래야 충전 불안감도 낮아지고 전기차가 늘어 충전 사업자도 유리해질 수 있어서다. 탄소 중립에서 중요한 것은 기기의 설치가 아니라 실제 전기로 회전된 바퀴의 이동 거리이기 때문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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