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영아 사체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아동학대 관리 체계의 빈틈이 또 여실히 드러났다. 정부는 출생신고가 누락되는 '유령아동'이 없도록 아이가 태어나면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즉시 알리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추진해왔지만, 의료계가 제동을 걸고 있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은 전날 영아살해 혐의로 30대 여성 A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A씨는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아기를 출산하고 살해한 뒤 자신의 아파트 내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해 온 혐의를 받는다. 2명의 피해 자녀 모두 생후 1일짜리 영아였다. 성별은 남녀 1명씩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경기 화성에서도 소재 파악이 되지 않은 영아 사례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 아기의 친모는 경찰 조사에서 "인터넷에서 아기를 데려간다는 사람을 찾게 돼 그에게 아기를 넘겼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고 보고 추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같은 범죄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건 부모에만 출생신고 의무를 지우는 현행 출생신고 체계 때문이다. 신생아 부모는 주민등록법상 출생 1개월 내 출생 신고해야 하지만 이를 어기더라도 과태료 처분에 그친다. 산부인과 등 의료기관은 행정 기관에 출생 사실을 통보할 의무가 없다.
문제는 태어난 사실조차 모르니 사망 파악이 안 되는 것이다. 미출생 신고된 '유령아동' 학대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생후 76일이 지난 아기를 영양결핍으로 숨지게 한 친모가 구속됐다. 이 친모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021년 초 친모에 의해 살해된 8살 여아도 출생 신고가 안 돼 있어 지방자치단체나 교육당국의 감시망 및 예방체계에 걸리지 않았다.
감사원은 2015~2022년 8년간 출산 후 출생 신고되지 않은 영아가 2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보건복지부는 유령아동의 학대 피해를 막기 위해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심평원에 직접 통보하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반대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의료계는 행정부담과 시스템상 문제에 대한 책임 소재 등을 이유로 해당 제도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출생과 동시에 의료기관에서 자동으로 출생 통보를 하게 되면, 일부 임신부의 경우 병원 출산을 꺼려 병원 밖에서 출산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언급했다. 의료계에선 행정부담이 잇따르는 만큼 출생 통보에 대해 수가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복지부 측은 "출생통보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가족관계 등록법이 개정돼야 하는데,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라며 "의료계를 계속 설득하면서 의료계가 행정적으로 최대한 편리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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