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 26명 가운데 14명이 손을 들었다. 이 중 2명은 이미 방과후 학원에서 ‘초등 의대반’에 다니고 있었다.
의과대학 쏠림 현상이 초등학교 사교육 현장까지 파고들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적성과 흥미를 찾기보다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 입학’ 목표를 향해서만 질주하는 형국이다.
서울의 초등 의대반 붐은 최근 지방 읍 단위로 확산하고 있다. 충남 홍성군의 한 읍에 있는 수학학원에는 올초 ‘초등 의대반’이 개설됐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한 학부모들의 요청을 반영해 만들어졌다는 후문이다.
대입 수험생이 되면 ‘메디컬 고시’라고 불리는 입시 경쟁이 본격화한다. 상위권 성적임에도 의대에 가기 위해 재수, 삼수를 하는 사례가 적지 않을 정도다. 재수생 A씨(20)는 “지난해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연세대·고려대 자연계열에 붙는 성적이 나왔지만 포기하고 의대를 목표로 전일제 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수능 합격선은 지방 의대가 서울대 자연계를 앞선 지 오래다. 종로학원이 2023학년도 전국 27개 의대 정시 합격 결과를 분석한 결과, 의대 최종 합격자의 국어·수학·탐구 백분위 평균 점수는 98.2점으로 나타났다. 대학별 백분위 점수를 공개한 2020학년도(97.4점) 이후 최고다. 서울대 자연계열 합격선과의 격차는 2020학년도 2.4점에서 2023학년도 4.3점으로 벌어졌다.
의대는 미래의 과학기술 인력까지 빨아들이는 ‘인재 블랙홀’이 되고 있다. 서울대 이공계뿐만 아니라 주요 과학기술원에서도 의대에 도전하기 위해 중도 자퇴하는 학생이 급증하는 추세다. KAIST에서는 지난 5년간 연평균 100명이 중도 이탈했다. UNIST(울산과학기술원), GIST(광주과학기술원),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등 나머지 과학기술원까지 합치면 1006명에 달한다. 과학기술원 1학년인 오모씨(21)는 “한의대 지원을 위해 다음 학기부터 휴학할 것”이라며 “현재 다니는 대학도 명문대고 대기업 취업이 잘 되지만, 재학생 10명 중 1명은 이미 반수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 입학 목적의 사교육에 함몰되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의학이 적성에 맞는 사람이 절대다수일 수 없다”며 “분야별로 적성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도 “아이들이 다양한 직업군을 접하고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갖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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