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공직에 입사한 후 처음으로 받은 월급 명세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월급이 옛 직장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높은 연봉을 기대하고 공직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참고 견뎠다고 했다. 하지만 서기관으로 승진한 후에도 박봉과 격무는 여전했다.
행시 출신 공무원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 어린 시선도 있었다. A씨는 “조만간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데, 지금 받는 연봉으로는 감당할 여력이 없다”며 “민간 기업으로 다시 이직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지난해 기획재정부에서도 국제금융 업무에 종사하던 민경채 사무관이 다시 민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직서를 내기도 했다.
민간 전문가를 뽑기 위해 도입된 국가공무원 민간경력자 5·7급 일괄채용시험(민경채)의 경쟁률이 시행 초기와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한때 안정적인 직장과 넉넉한 공무원연금 덕분에 이 시험의 경쟁률은 30대 1 이상까지 치솟았지만, 올해는 이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진 것이다.
민경채는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 전문직을 비롯한 다양한 경력의 민간 부문 인재를 뽑기 위해 2011년 도입됐다. 이른바 ‘바늘구멍’인 행시에 합격하지 않고도 일정 기간의 경력 및 학위, 자격증만 있으면 단숨에 관리직인 5급부터 공직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통로다. 필기시험(PSAT)을 거쳐 서류전형과 면접시험을 통해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
5급뿐 아니라 7급 시험도 있다. 5급의 경우 △관련분야 10년 이상(또는 관리자로서 3년 이상) 경력자 △관련 분야 박사 또는 석사학위 취득 후 4년 이상 경력자 △관련 분야 국가공인자격증 등 취득 후 일정 기간(2∼7년) 경력자 등의 응시 자격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
도입 초기에는 민간 전문가의 공직 선호도가 높아 경쟁률도 높았다. 2017년엔 32.4대 1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2019년 26.6대 1로 떨어진 데 이어 지난해엔 14.0대 1까지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공무원연금 개혁에 따른 연금 혜택 감소,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 본격화 등이 경쟁률을 낮췄다고 보고 있다.
23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5·7급 민경채 경쟁률은 지난해보다 소폭 상승한 16.9대 1로 집계됐다. 경력, 학위, 자격증 등의 응시 자격 요건을 복수로 설정해 한 개라도 충족하면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선발 단위를 확대한 데 따른 것이다. 이전보다 지원 요건을 완화해 줬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뛰어난 민간 전문가를 공직에 영입하겠다는 당초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의사나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 자격이 있어야 하는 분야는 민간 부문에서도 수요가 많기 때문에 굳이 공직에 들어올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간에 비해 낮은 공무원 급여도 민간 전문가들의 발길이 줄어든 핵심 이유로 꼽힌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 대비 공무원 보수 수준은 82%로 역대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민간 대비 공무원 보수 수준은 민간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공무원 보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산출한 비율이다.
비교 대상 민간임금은 상용 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체의 사무관리직 보수다. 민경채에 합격한 공무원들의 상당수가 전문직이나 대기업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이 느끼는 연봉에 대한 체감도는 더 민감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공직사회 특유의 인사 적체도 민경채 공무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요인이다. 민경채로 입사하면 최소한 10년은 지나야 서기관을 달 수 있다. 가뜩이나 행시 출신 사무관들도 서기관 승진이 늦어지는 상황에서 민경채 공무원들의 승진은 더 어렵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정부 관계자는 “민경채 시험 경쟁률이 급감했다는 것은 더 이상 공직이 오고 싶어 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 증명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공직사회 경험을 해 본 민경채 공무원들이 다시 민간으로 나가는 것을 나쁘게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며 “오히려 공직사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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