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 호텔에 들어서는 여행객들을 가장 먼저 맞는 직원이 컨시어지다. 방문객들이 손쉽게 투숙하고 호텔 편의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이들의 통상적 업무다.
그런데 5성급 호텔에서 근무하는 ‘골든키 컨시어지’의 업무 범위는 이보다 훨씬 넓다. 신규 거래처 물색, 택시 예약, 동반 테니스…. 이런 최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컨시어지들에게만 주어지는 별도의 배지가 있다. 바로 ‘골든키(황금열쇠)’다.
골든키 배지는 1929년 설립된 세계컨시어지협회가 인정한 베테랑 컨시어지들에게만 주어진다. 23일 호텔업계에 따르면 1만여 명에 달하는 국내 5성급 호텔 호텔리어 가운데 골든키 컨시어지로 근무하는 사람은 27명뿐이다.
골든키 컨시어지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다양하다. 사업가 투숙객의 비즈니스 업무를 지원하는 일도 있다. 지난해 말 골든키 컨시어지로 선정된 정용철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매니저(45·왼쪽)도 그런 경험이 있다.
올해 초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방한한 투숙객이 한국에서 커피 캔을 밀봉하는 기계 구매를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정 매니저는 기계를 생산·판매하는 업체와 직접 연락해 견적서와 계약서를 투숙객에게 전달했다. 그는 “컨시어지 서비스 중에도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었다”면서도 “다만 프리미엄 고객일수록 고난도의 서비스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2년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 입사한 정 매니저는 식음료(F&B)·프런트 등 호텔 내 다양한 부서를 거친 22년차 베테랑 호텔리어다. 고객과 더욱 깊게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에 2018년 컨시어지 부서에 지원했다.
맞춤 서비스를 위해 업무 외 시간을 쓰는 일도 있다. 함지환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매니저(35·오른쪽)는 아마추어 테니스 선수로 활동하는 투숙객을 위해 연습 파트너로 나선 적이 있다.
함 매니저는 “10년 테니스 구력을 살려 내가 직접 연습 파트너로 나섰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6년 12월 3성급인 서울 명동 이비스의 프런트 부서에서 호텔리어 일을 시작했다. 이후 컨시어지가 되기 위해 2018년 5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로 자리로 옮겼다.
제공하는 서비스의 난도가 높은 만큼 골든키 컨시어지로 선정되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 우선 호텔 컨시어지 부서에서 3년 이상, 객실 부서에서 5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F&B 및 라운지 운영 부서 경력은 인정되지 않는다. 소속 호텔 총지배인, 객실 부서장, 기존 골든키 컨시어지 3인의 추천도 받아야 한다. 궁극적으론 세계컨시어지협회가 실시하는 필기·면접 시험을 통과해야 골든키 컨시어지로 거듭날 수 있다. 컨시어지들 사이에선 이 시험을 ‘호텔업계의 고시(考試)’로 부른다.
호텔리어가 골든키 배지를 단다고 해서 급여가 더 오르는 건 아니다. 승진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최고의 호텔리어’라는 명예만으로 ‘컨시어지라면 꼭 도전해봐야 하는 영역’으로 꼽힌다. 호텔업계에선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2237달러에 달할 정도로 한국의 소득 수준이 높아진 만큼 프리미엄 컨시어지 서비스 수요가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호텔업은 서비스 업종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지요. 외식업종 등에선 무인화가 트렌드라고 하지만, 호텔업에서 대면 서비스 수요는 유지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정용철 매니저)
글=이미경/사진=이솔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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