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LG디스플레이 등 LG그룹 계열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사들은 높은 수준의 품질 기준과 까다로운 규정을 요구받는다. 마케팅보다 완성도와 신시장 개척에 힘을 쏟는 LG그룹 특유의 기조 때문이다. 그토록 깐깐한 LG그룹이 34년간 변함없이 믿고 쓴 협력사가 있다. 경북 구미에 위치한 탑런토탈솔루션(이하 '탑런')이 주인공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장 디스플레이 및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부품 제조 기술을 보유한 이 회사는 LG그룹과 보조를 맞춰 'K-디스플레이' 신화를 다시 쓰겠단 각오다.
박영근 탑런 대표는 2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디스플레이가 사양 산업이라는 건 큰 오해"라며 "LCD(액정표시장치)와 달리 자동차 디스플레이는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시장인 데다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플라스틱 OLED(P-OLED)는 한국이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회사는 2004년 출범한 전장 디스플레이 및 OLED 부품 전문 제조기업으로, 1989년 설립된 동양산업이 모태다. 사출, 회로, 정밀·광학, 금형 사업에서 시작해 2020년부터 전장장치(전장)로 영역을 확장했다.
창업주인 박용해 회장은 LG전자 협력사 모임인 '협력회' 회장을 20여 년간 맡았다.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LG디스플레이에서 기술 영업을 하다 탑런에 합류한 박 대표 역시 지난해부터 LG디스플레이 협력회 회장, LG전자 VS사업본부 협력회 회장을 역임 중이다. 박 대표는 "협력회 회장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막중한 자리"라며 "LG그룹으로부터 가장 인정을 받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탑런은 차량용 디스플레이 모듈 시장에 진출하면서 설계부터 생산까지 일괄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고객사의 핵심 공급망관리(SCM) 파트너이자 ODM(제조자개발방식) 전문 제조기업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박 대표는 "회사 이름은 '최고의 위치에서 힘차게 달리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며 "1998년 내부 혁신 활동의 일환으로 품질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전담 조직을 신설했고 이는 '탑런 운동'으로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주최하는 기업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탑런 운동은 1998년도 대통령상까지 수상했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대비 25%, 78% 증가한 4830억원, 200억원을 기록했다. 임직원은 지난해 12월 기준 3639명이다. 주요사업은 운전석 계기판 및 CID(차량용 정보안내 디스플레이)를 개발하고 제조하는 BLU(Back Light Unit) 부문과 모바일에 들어가는 외부 충격 보호용 부품인 스티프너(Stiffener·아이폰 내 외부 충격 보호용 부품), 슬림한 모바일 디자인 구현에 필수인 베젤 등을 만드는 P-OLED 부문이 있다. 헤드램프와 헤드업디스플레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내장재 등 자동차 부속품과 TV 내·외장품, 의료기기까지 아우르는 초정밀 사출품도 생산하고 있다.
주요 고객사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현대모비스다. LG전자는 1989년 회사 창립 이후 34년간 사업을 함께 해오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탑런의 BLU, 스티프너, 베젤 등과 같은 미래 사업을 함께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동차 부품까지 사업을 확장했고, 인도와 폴란드 법인에선 현대모비스와 협력하고 있다.
글로벌 대기업들도 탑런을 찾고 있다. 핵심 기술인 도광판(램프로부터 유입된 빛을 화면 전체에 균일하게 확산시키는 부품) 패턴 설계 및 제조 능력을 기반으로 벤츠, BMW, 폭스바겐, 현대기아차 등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에 전장용 디스플레이 모듈을 납품하고 있다. 박 대표는 "미국 스마트폰 제조사 A사와 독일 대형 부품사인 C사와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귀띔했다.
P-OLED 기술에 대한 자신감도 숨기지 않았다. 박 대표는 "P-OLED 같은 경우 자동차 디스플레이나 모바일 제품에 그냥 단순하게 붙이는 게 아니다"라며 "방습, 방열 기능을 담당하는 부품들이 필요하고, 이는 탑런이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췄다"고 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와 30년 넘게 손발을 맞추면서, LG그룹 글로벌 생산기지가 있는 7개 국가에 동반 진출했다. 수주 물량 증가에 따른 매출 증가세도 점쳐지고 있다. 주고객사인 LG디스플레이가 애플 신형 아이폰 시리즈에 작년보다 50% 증가한 OLED 패널을 공급할 예정이어서다. 내년부터는 태블릿 및 PC에도 OLED 패널 적용에 따른 수주가 기대된다. 탑런 역시 OLED 부품 수주 물량이 대폭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박 대표는 "차량용 디스플레이 출하량은 지난해 1억3000만대에서 2030년에는 약 2억3900만대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의 자동차 전장 디스플레이의 주력 제품인 CID 장착에 이어 조수석과 뒷좌석 특화 디스플레이 등 위치별 전장 기술을 확보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5년 후 매출 1조원, 영업이익 572억원 달성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박 대표는 "2세 경영자로서 회사를 100년 기업으로 키워야 하는 의무가 있다"며 "IPO를 통해 확충한 자금으로 반도체와 2차전지 등 종합 소부장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디스플레이가 중국에 가격 경쟁력에 밀려 위기를 맞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선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박 대표는 "중국이 많이 따라왔지만 그건 LCD와 TV에 국한된 것"이라며 "하이엔드용 LCD와 P-OLED는 한국 기술력 수준이 훨씬 월등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정부가 P-OLED를 국가전략 산업을 지정했는데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LG와 삼성 같은 전방의 두 대기업과 탑런이 잘 협력해 중국과의 디스플레이 전쟁에서 절대 지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구미=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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