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매장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남미의 베네수엘라가 고질적인 연료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차량에 넣을 기름 부족으로 운송하지 못한 농작물을 폐기한 농민들이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일도 생기고 있다.
베네수엘라 주요 시민사회단체 '에스파시오 푸블리코'는 22일(현지시간)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홈페이지에 논평을 내고 "휘발유 부족에 항의하는 농부 2명이 최근 체포됐다 풀려났다"며 "정부가 연료난 개선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9일 서부 메리다주 푸에블로야노에서는 농부 이스네트 안토니오 로드리게스 맘벨이 당근을 내다 버렸다가 적발돼 공정 가격법 위반 혐의로 붙잡혔다. 그는 당국에 "화물차에 넣을 기름이 없어 당근을 유통업자에 보내지 못했다"며 "그냥 썩어나가고 있어 어쩔 수 없이 폐기한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튿날에는 트루히요주 카리체에 사는 바라사르테 트롬페테로 호나르가 맘벨과 비슷한 이유로 토마토를 강물에 대량으로 버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풀려나기도 했다.
이 영상은 SNS에 공유되면서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타레크 윌리엄 사브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두 농부의 얼굴 사진과 신원을 공개하고 "공정 가격법을 위반한 자들은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식량을 멋대로 버리는 사람은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다른 한 켠에서는 '근본적인 사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의견이 맞섰다.
베네수엘라의 국민들은 최근 고질적인 기름난으로 고통받고 있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PDVSA(Petroleos de Venezuela, S.A)의 부실 경영과 국가 에너지 정책 실패 등이 꼽힌다.
1976년 설립된 PDVSA는 한때 매출액 기준 세계 27대 업체(2009년)에 들 정도로 성장했으나, 대규모 비위 의혹으로 최근 사정의 표적이 됐다. 임직원과 관계 공무원을 수조원대의 석유 판매금 횡령 등 혐의로 줄줄이 경찰에 체포되는 등 베네수엘라에서 이례적으로 공직자들이 부정부패 사건으로 수사를 받았다.
정제 설비 투자 등을 제때 하지 않으면서 한때 최대 일 300만 배럴에 달했던 석유 생산량이 급감했다. 이주 베네수엘라 제2의 도시인 마라카이보에는 석유가 호수에 대량 유출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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