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 구도심 주요 문화재 주변의 ‘개발 규제’는 연원이 오래됐다. 대표적인 게 고도제한이다. 경복궁 창덕궁을 비롯한 고궁과 종묘 남대문 동대문 등에 포괄적으로 적용된다. 서울 종로와 청계천에 걸쳐 있는 ‘세운지구’ 등이 다채로운 건물, 멋진 스카이라인의 현대 도시로 변모하지 못하는 큰 이유다. 서울시가 문화재 주변에 획일적으로 엄격하게 적용되는 고도제한 완화에 나서 주목된다. 열쇠는 문화재청이 쥐고 있다. 주요 문화재가 지닌 역사성과 ‘권위’ 보호, 문화재 안에서의 조망과 경관, 문화재 방문객이 느낄 정서적 요소 등이 고도제한을 법제화한 주된 이유다. 반면 서울시가 조례를 개정해 고도 규제를 완화하려는 것은 낙후된 구도심 개발과 균형발전의 필요성 때문이다. 문화재 주변에 대한 일괄 고도제한은 계속해서 엄격하게 유지돼야 하나.
고도제한은 문화재 주변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을 예로 들면 남산 주변이나 한강변에도 있다. 아름다운 경관, 탁 트이고 멋있는 조망을 최대 다수가 두루 누리게 하려는 규정이다. 소수만 특혜처럼 누리는 경관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개방되는 조망권 개념으로 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남산 중턱의 외국인아파트를 비싼 비용을 들여 철거하기도 했고, 한강변 아파트 건설에 대해서는 높이를 제한해왔다. 문화재가 주로 구도심에 있다 보니 도심공동화를 초래하는 인위적 장벽처럼 비치지만, 구도심 재개발을 일부러 막는다고 봐서는 안 된다.
도시에서 건물 높이 규제는 쾌적한 공간 확보를 위한 기본 장치다. 햇볕 들기, 공기 이동 장애물 제거, 단독주택 등 낮은 지역 생활자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 밀집된 도시에서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런 원리가 문화재 주변에선 좀 더 엄격하게 적용될 뿐이다. 말로만 외치는 문화재 보호가 아니라 이런 규제가 있어야 적극적인 보호가 가능해진다.
고도 규제로 인한 결과를 보면 왜 개선책이 필요한지 답이 나온다. 무엇보다 낙후된 구도심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걸림돌이다. 서울의 원도심인 종로 청계천 주변이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것도 규제가 재개발을 막기 때문이다. 새롭고 멋진 건물을 지을 기회를 가로막으면서 개인재산권 침해를 초래하고, 도심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구도심에는 수백 년째 사람이 계속 살아와 땅을 파면 어디에서든 질그릇 조각이라도 나올 수 있다. 엄격한 문화재 관리 법규에 따라 이에 대한 규제를 받는 터에 완고하기 짝이 없는 건물 층수 제한까지 겹치니 누가 자본을 투입해 재개발에 나서겠나. 이대로 가면 국가 1번지 격인 광화문 일대도 만년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부터 번화가인 종로도 퇴락 일변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과도한 고도 규제가 계속 이어지면 가뜩이나 번쩍번쩍한 강남만 발전할 것이다.
고도제한 규제를 완화해 구도심 퇴락을 막고 개발이익을 적절하게 환수해 그 비용으로 문화재 보호에 제대로 쓰는 게 이성적·합리적이다. 재개발 부담금으로 문화재 지역에 폐쇄회로TV(CCTV)라도 설치해 ‘남대문 방화사건’ 같은 어이없는 인재를 막는 게 훨씬 현실적인 문화재 보호책이다. 이상적·교조적 유적 보호에 따른 결과를 봐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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