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군사 반란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23년 독재 권력이 흔들리고 있다. 2000년 집권한 이후 철통같던 푸틴 대통령의 권력이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우크라이나 침공의 선봉에 섰던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수장은 지난 23일 쿠데타를 선언하고 기수를 돌려 불과 20시간 만에 수도 모스크바 근교까지 뚫고 올라갔다. 이 과정에서 일부 러시아군과 시민들이 묵인·동조하다 못해 환영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24일(현지시간) 극적인 타협으로 모스크바 시가전 위기는 넘겼지만, 푸틴 대통령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게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푸틴의 최측근, 왜 칼 겨눴나
바그너그룹의 반란을 촉발한 원인은 프리고진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 간 갈등이다.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군 수뇌부와 갈등을 일으켰다. 프리고진은 정규군의 전술이 허술하고 무기 보급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등의 이유로 군 수뇌부를 지속적으로 비판했다. 지난달부터는 푸틴 대통령을 ‘행복한 할아버지’ ‘얼간이’로 빗대 비난하기도 했다. 푸틴은 결국 쇼이구 장관의 손을 들어줬다. 러시아 당국은 바그너의 전쟁범죄를 공개하는 한편 새로운 군사 계약으로 사실상 프리고진의 지휘권 박탈에 나섰다. 자신이 축출당하고 전쟁 책임까지 뒤집어쓸 처지에 몰리자 프리고진이 반란을 기획했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푸틴 숨통 조인 긴박한 하루
러시아 국경을 넘은 바그너그룹은 빠르게 진격하며 세계에 충격을 줬다. 바그너그룹은 곧바로 로스토프나도누 군 사령부를 장악한 데 이어 모스크바 남쪽 보로네시의 군사시설을 잇따라 접수했다. 병력은 일반 트럭에 탑승하고 전차 등 기갑차량은 트레일러에 실어 우크라이나 전선 보급로인 고속도로를 따라 빠르게 진군했다.
러시아 정규군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집중 투입돼 본토 방어 병력이 적어 큰 저항도 받지 않았다. 보로네시주를 지난 바그너그룹은 모스크바에서 350㎞ 거리의 리페츠크주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갔고 수도 200㎞ 밖에서 진격을 멈췄다. 불과 20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다.
23년 집권 푸틴 최대 위기
프리고진은 모스크바를 코앞에 두고 돌연 “러시아인의 피를 흘리게 하는 데 따르는 책임을 이해하기 때문에 기지로 돌아간다”며 반란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에 따른 것이다. 크렘린궁도 즉각 입장을 내 “프리고진에 대한 형사입건은 취소될 것이며 그는 벨라루스로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등에 칼이 꽂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며 강경 대응할 것을 시사했으나, 결국 벨라루스의 손을 빌려 사태를 해결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다. 다만 푸틴의 측근 루카셴코 대통령이 프리고진의 안전을 보장할지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머지않아 이른바 ‘푸틴의 홍차’를 받고 암살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이번 사건으로 푸틴 대통령 독재 정권의 누수가 심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날 러시아 시민들은 바그너 병력을 환영하며 프리고진과 기념사진을 찍는 등 심정적으로 반란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