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에 나온 이른바 킬러 문항의 일부다. 이런 글을 읽고 정답을 찾기 위해 전국의 학부모들이 자녀 사교육에 돈을 들인다. 작년 한 해에만 25조9538억원이었다. 사교육도 경제 행위다. 경제학에선 인간을 효용을 최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로 가정한다. 국내총생산(GDP)의 1.2%, 삼성전자 연구개발비(24조9292억원)보다 큰 금액을 쏟아붓는 사교육은 과연 합리적인 의사 결정일까.
‘교육은 돈값을 한다(Education pays).’ 미국 노동통계국이 1년에 한 번씩 내는 보고서의 제목이다. 지난 5월 나온 자료를 보자. 작년 25세 이상 미국인 중 대졸자의 주간 소득 중위값은 1432달러로 고졸자(853달러)의 1.7배였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3만달러(약 3900만원) 넘게 차이 난다. 박사 학위 소지자의 주간 소득 중위값은 2083달러로 대졸의 1.4배, 고졸의 2.4배였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김영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2016년에 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학력(학벌)의 비경제적 효과 추정’이란 논문이 있다. 성인 994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자신의 전반적인 생활에 ‘만족 혹은 매우 만족한다’는 응답이 3095명으로 31.1%였다. 그런데 상위권 대학(입학 성적 상위 10개 대학) 출신은 만족한다는 비율이 54.0%로 훨씬 높았다. 전문대졸은 35.1%, 고졸은 28.8%에 그쳤다.
조금 다른 견해도 있다. 교육이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학자가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스펜스 미국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다. 그는 학력을 정보 비대칭이 큰 시장에서 정보를 많이 가진 시장 참여자가 보내는 ‘신호’라고 봤다.
구직자의 능력은 구직자 본인이 가장 잘 안다. 반면 기업은 구직자의 능력, 근면성, 인성 등을 파악하기 힘든 상황에서 직원을 뽑아야 한다. 이때 대학 졸업장과 학위가 기업에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는 신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한 사람이 회사에서도 성실하게 일하지 않겠냐는 판단을 기업이 내린다는 의미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명문대가 학생의 실력을 높여준다기보다는 애초에 실력 있는 학생이 명문대에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 효과에 대한 견해는 다르지만 두 가지 관점 모두 학력과 소득 간 높은 상관관계를 인정한다. 이름 있는 대학, 취업 잘되는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고액의 사교육을 받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문제는 돈뿐만이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만 18세 이하 어린이·청소년이 2021년 3만9870명으로 2년 전보다 18.9% 증가했다. 작년 상반기에만 3만399명이었다.
‘명문대를 나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해봤자 그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정해져 있다. 아이들은 그 여정의 절반도 못 가 이미 불행해진다. 학부모는 등골이 휘고, 사교육 업자들의 배만 불린다. 개개인은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만, 전체로 보면 비합리적인 결과가 나오는 ‘구성의 오류’다.
삼성전자가 연구개발에 쓴 돈은 외화와 일자리로 돌아온다. 그보다 규모가 큰 사교육비는 한국 사회에 뭘 남기고 있을까.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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